순이의 고백(자폐스펙트럼 오빠에게)
시인: 문주집에 사는 순이
우리 오빠는
나에겐 친절해요.
나를 쓰담해 주고 안아주고
다정하게 말해요.
하지만
고기를 먹을 땐
내가 아무리 달라고 짖어도 안 줘요.
인간의 음식을 먹으면 안 된대요.
내 건강이 나빠진대요.
내가 소리에 예민한 줄 알면서
키보드를 탁탁 두드려 게임을 해요.
엄마에게 화를 내면
내가 무서워서 현관 앞에 가 있는 걸 알면서
참지 않아요.
그래도
오빠는 엄마가 아프면 엄마 밥은 안 줘도
내 사료는 꼭 챙겨줘요.
엄마의 슬픔을
서영언니의 아픔은 몰라도
나와 울이의 간식은 챙겨줘요.
엄마는 내가 오빠의 무감정한 마음을 고쳐줄 수 있대요.
인간의 사랑은 변덕이 심해서
온전한 사랑을 줄 수가 없지만
나는 오빠가 시끄럽게 해도
화를 내도
눈물을 흘려도
오빠에게 꼬리를 흔들고 달려들고
품에 안기고
오빠의 눈물을 핥아주기 때문에
오빠가 감정을 느끼고 점점 좋아지는 거래요.
근데
그거 알아요?
나도 잠은 꼭 엄마랑 잔다는 거.
내가 오빠를 사랑하는 이유는
엄마가 그 사람을 사랑해서 그렇다는 것.
그 사람이 치유되어서 엄마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난 뭐든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지루한 견생을 버티는 힘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