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
눈을 뜬다. 하얀 색. 천장인가. 빛이 들어온다. 밝다. 붉은 기도 섞여있는 것 같은데. 고개를 젖혀 발 저편으로 시선을 옮긴다. 창문이다. 커튼이 쳐져있다. 옅은 빨강. 잠을 잤다. 영문도 모를 꿈들을 꾸었다. 정신없었지만 기억은 잘 나지 않는 장면들. 수없이 뛰고 얘기하고 생각한 꿈의 잔상만 남아있다. 몸이 무겁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한 느낌. 어제 밤 계획을 세웠던 것 같은데 그저 멍한 상태로 천장을 바라보는 상태에 머물러있다. 침대 위에 표류하는 듯. 촉각에 집중하여 몸이 시트와 이불에 닿아있는 감촉을 쫒는다. 머리가 베게에 파묻힌다. 물보다 단단하고 공기보다 무거운, 부드러운, 포근한. 눈을 감으면 나는 다시 바빠진다.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꿈속에 휘몰아치는 바쁜 바람에 휩싸인다. 그 세계 속에서 나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존재일 뿐이다. 빠져나오는 방법은 하나뿐. 몸의 저항. 꿈에 아무리 꽉 잡혀있어도 물리적 움직임을 버티긴 어렵다. 꿈과 몸의 싸움 사이에서 나는 괴롭다.
바쁜 아침.
오늘은 어제 밤 계획했던 것보다 한 시간이나 더 자버렸다. 그래도 심하게 늦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일어나서 계획을 조금씩 쪼개어 수행했다. 계획을 상황에 맞춰가며 수행하려고 하다 보니 유연한 시간 관리가 가능해졌다. 가령 30분 정도 걸릴 작업 시간을 10분, 20분으로 쪼개서 하거나 우선순위 상위의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 시간이 적어지거나 삭제되는 항목도 생겨난다. 계획표를 보았을 때 모든 항목이 다 수행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시간에 쫒기는 게 아니라 그것을 컨트롤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일이다.
볼의 붓기는 아직도 심하다. 입 벌리기가 어렵고 뻐근함도 여전하다. 그래도 뭐랄까 이런 상태에 적응은 좀 된 느낌이다. 입을 더 크게 벌릴 수도 있고 턱을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조심만 한다면 사랑니를 뺀 쪽으로 씹기도 가능하다. 얼굴 한쪽은 아직 정직한 사각형이지만 미세한 변화가 느껴지는 상태다.
교육은 순조롭게 진행 중. 내용도 재미있고 편안한 분위기다. 다른 분들이 모두 친절하시고 서로 좋게 맞춰가려는 편인 것 같아 나쁘지 않다. 또 교육 내용이 배울수록 업무뿐만 아니라 나를 되돌아보는 데에도 참고가 되어 흥미롭다. 계속 미술 하는, 그림 그리는 나의 친구들을 떠나 온 게 항상 마음 한 편에 아쉬움으로 남아있지만 지금 배우는 것들과 앞으로 할 일들이 나에게 새로운, 좋은 길이 되었으면 한다.
점점 혼자가 익숙해진다. 담배도 많이 피우고 사랑니도 뽑으니 충분히 시련의 시간을 건너온 건가. 최근 조금 바빠지기도 했고. 다행이지. 그림을 덜 그리니 과거에서 멀어지는 느낌이고 덕분에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게 맞는 길이길.
매일 30분 씩 글을 쓰니 쓸 얘기가 점점 고갈된다. 이제 적당히 기분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빈 페이지를 채우는 것도 무리인가보다. 조금 더 깊숙한 이야기를 하거나 실용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 일상이 단조로운 것은 평화롭고 잔잔하단 뜻이겠지. 갑자기 이 글이 아무말 대잔치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림을 그리지 않으니 나를 덜 남기는 기분이다. 그리기는 흔적을 남기는 방법 중 하나. 대학교에 들어가 처음 맞이한 미술은 권위적, 엘리트적 산물. 그런 커다란 진입장벽을 뚫고 들어가니 실상은 별거 없는 듯. 어차피 사람 사는 이야기고 병신은 병신 짓을 할 뿐. 아마 미술 엘리트주의의 기둥 중 반절 이상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거겠지. 강력한 꼰대의 빔.
지겹다. 아방가르드를 가르치는 미술 교단에서 신입생은 아방가르드를 잊은 이들을 처음 바라본다. 그들도 한 때는 아방가르드였겠거니. 영원한 아방가르드도 없을 거고. 아방가르드의 딜레마인가. 내가 멍청해서 잘 모르는 건가. 그런데 뻔한 레파토리 아닌가. 전위 예술가가 아니라 평면 혹은 입체 수공예 장인이 돼서 모더니즘적 권위를 얻고 시장과 학교에 진출, 이름을 알린다.
나는 점점 더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