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6.
벌써 12월의 반이 지났네. 날짜를 쓰며 새삼스레 놀란다. 어제는 괜히 자기 싫었던 밤. 평소보다 한 시간 반가량 늦게 잤다. 별다른 걸 하기 보다는 핸드폰을 하며 죽친 거다. 결국 조금 늦게 일어나고 더 피곤할 따름이고. 확실히 머리 회전이 느린 기분이다. 커피를 좀 많이 마셔야겠다. 귤도 먹어야지. 비타민과 당, 카페인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려야겠다. 어제 늦게 잔 이유는 헛헛함 때문이다. 며칠에 한 번씩 이런다. 외로움을 강하게 느끼는 날이 찾아오는 거다. 그럴 때면 할 일을 앞에 두고 핸드폰 위로 손가락을 서성인다. 쓸데없이 스크린을 만지작거리다가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지.’하는 물음과 함께 폰을 내려놓는다. 그러곤 몇 분 안 가 다시 집고. 이런 쓰잘데기 없는 행동에 버려지는 시간이 아깝다. 오늘 아침, 지금이 그걸 가장 많이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고. 출근 전 할 일들이 있는데, 가급적 빨리빨리 부지런히 쳐내고 싶은데 괜한 감정 때문에 시간을 죽였다. 뭐. 그래도 오늘은 끝나고 바로 집에 올 거니까. 밤엔 분명 어제보다 여유 있을 거다. 그거라도 지금은 다행이다.
어제 매일 조금씩 그리던 기차 그림의 스케치가 완성되었다. 매일 30분 안팎으로 시간을 내어 진행해온 그림이다. 주말에 드로잉 하면서 재밌을 것 같은 도상이 튀어나왔고, 그걸 구체화한 것이다. 트랙 위를 달리는 기차의 그림이다. 기차에는 얼굴이 있고 각 칸 마다 많은 사람들과 일들이 있다. 기차의 트랙은 동그라미 모양.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기차는 왔던 길을 끊임없이 지나쳐가는 상황에 빠져있다. 어제부터인가 그림의 제목을 결정하는 데 드는 고민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Train for west’로 할까 하다가 ‘Train for eternity’ 등을 고민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또 별로인 것 같아서, 아마 다시 고민해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 그림의 내용이 무엇일까 정리해봐야겠다는 쪽으로 이어졌다.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뭘까. 무심하고 멍한 듯 눈이 풀린 표정, 4량 기차, 사람들, 폭력, 사건, 수족관, 새, 정원, 동그란 모양으로 높이 솟은 트랙, 자연. 뭔가 키워드들을 뽑아보니, ‘폭력 사건마저 다른 일들처럼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매일의 반복.’이라고 머릿속에 정리되는 듯하다. 사실 매일 쓰던 주제에서 멀지 않다. ‘Boring Train’같은 제목이 오히려 더 나을 것 같다. 지루한 기차. 혹은 그냥 기차는 어떨까.
그림을 너무 설명해주는 제목을 좋아하지 않는다. 제목은 여운과 여지를 남기는 출구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게 나의 주된 의지다. 글에서 설명이 너무 많이 되면 그림은 생각의 여지가 사라진 채 단순한 설명 보조 삽화로 전락해버린다. 그럼 그건 생각과 글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고. 나에게 생각과 글은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을 뒷받침해주는 지지대 역할을 해야 한 다는 게 나의 입장이고. 나에게 있어 주인공은 그림이다. 내 생각을 토대로 만들어진 그림이 다른 사람에게서 그 사람만의 해석으로 읽힌다면 그건 나의 큰 보람이다. 어차피 설명이나 글은 원하는 사람이 물어보거나 가져갈 테니까.
아무튼, 제목을 못 정해서 큰일이다. 오늘 내일 중에는 완성될 게 분명한데, 그 전엔 괜찮은 걸 뽑아내고 싶다.
매슬로가 고안한 인간의 5대 욕구에 대한 말을 들었다, 어제. 피라미드 형태를 그리더니 다섯 칸으로 나누고 밑에서부터 생존, 안전, 소속, 인정, 자아실현으로 기입했다. 그림은 나에게 인정과 자아실현을 이루어주는 수단이었구나 싶었다. 물론 예전의 나는 인정받기 위함이 더 컸지만. 나중에 작업을 열심히 했던 이유가 인정욕구 때문이었다는 걸 얼핏 깨닫고 난 뒤에는 그림을 열심히 그렸던 시간과 자아가 부끄러워졌다. 그림은 점점 타인의 시선보단 나를 위한 것으로 바뀌어갔다. 안전의 목적을 갖고 들어갔던 동굴. 동굴 깊숙이 들어가니 소속감을 느낄 곳이 사라졌다. 소통이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 거기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데 1년이 넘게 걸렸다. 그림은 거의 그리지 못하는 상태로. 아무튼 시간 끝났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