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7.
월요일. 2021년의 마지막 월요일이자 주간의 시작. 지나가는 1년이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간다. 미술관에 있었던 일, 사람들. 라섹 수술, 잠깐 동안 카페에서 일한 시간, 사람들, 전 여자친구, 학원 일, 새로 사귄 사람들, 아이들. 중간 중간 사건들도 있었고. 그래도 작년보단 순탄한 느낌이다. 물론 여자 친구와 헤어졌을 땐 무척 힘들었지만.
앞으로 이아들과 지내게 될 건데, 부감이 크다. 무섭기도 하다. 슬슬 출석부를 외워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학원에서 적었던 것들로 기억을 회상하고. 아이들의 모습을 최대한 꺼내놔야지. 출석부는 내일부터 볼 거다. 오늘은 치과에, 약속에 정신이 없는 하루일 테니까.
저녁에는 학부 사람들을 만날 예정이다. 세 명과 만난다. 둘은 동기 동생들, 한 명은 졸업 동기 편입생 누나. 다들 친하게 학교에 다녔지만 (심지어 그 셋은 학부 때 같은 자리를 쓰기도 했다.) 졸업하고는 나랑 따로 볼 뿐, 동기들과 누나는 따로 보지 않았다. 오늘은 졸업 후 그들이 처음 보는 날. 나에겐 소중한 사람들이고 이런 자리가 생기다니 기쁘다.
곧 신경치료를 받으러 간다. 어금니 때운 밑으로 신경에 문제가 생겼는지 두통이 생겼다. 아말감으로 때운 부분 다 뜯어내고 신경관을 제거할 예정이다. 크라운이 비싼 게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이렇게 하는 게 나중에 더 큰 문제 생기는 것보다 저렴하지 않을까란 기대 아닌 기대도 한다. 걱정을 덮기 위한 합리화인가.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3일 간 한 시간씩 일찍 일어나고 있다. 12시부터 시작해 오늘은 10시 기상을 달성했다. 물론 너무 힘들었지만. 집에서 턱걸이를 조금씩 했는데, 별로 하지도 않는 것 같고 몸에서 일으키는 반응은 너무 크다. 작은 근육통들이 여기저기서 난리다. 작고 연약한 몸뚱어리는 마음과 같이 움직여주지 못한다. 10분 끝.
오늘의 두 번째 10분 글쓰기는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진행된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브런치에 올리는 일기는 항상 내 방 책상 위, 거치대에 고히 모셔놓은 노트북에서 작성되기 때문. 나는 왜인지 핸드폰 자판에 약하다. 아날로그의 마지막을 고하고 디지털의 전환을 최전선에서 맞이했음에도 이상하게. 그래서 지금의 글쓰기는 새롭기도, 불편하기도 하다. 가는 곳은 한강진역이다. 근처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아마 블루스퀘어 쪽으로 가겠지. 작년부터 올 초까지 한강진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던 게 떠오른다. 김빠진 풍선마냥 알차지 못하고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아무것도 못하던 상태에서 나아졌던 계기가 무어라도 해보려고 했을 때 인건 아이러니다. 최고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아집은 대학교에 갈 때부터 꺾였다. 최선을 다 했지만 결과는 안 좋았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했으니 이 정도로 후회는 없다.'고 생각하며 차선의 학교에서 최고가 되고자 했다. 이후 인생의 갈림길에서 나는 항상 합리화만 해왔던 것 같다. 이런 합리화를 하기 위해 억지로 고생을 사서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했다는 태도가, 고생했다는 누군가의 이해가 합리화의 트리거였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기보단 무식하게 달렸던 것일지도. 어릴 적, 몇 학년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초등학교 시절, 품띠를 따려고 겨루기를 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원래 나는 전략적인 작전을 갖고 겨루기에 나설 요량이었다. 체급이 큰 상대였기에 치고 빠지기를 하고자 했다. 복싱으로 치면 아웃복서였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불현듯 관장님이 도망치지 말라고 조언해주었다. 10살 언저리의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 도망치지 말라는 이야기는 포기하지 말라의 의미였지만, 전략적으로 하지 말란 건 아니었다. 결국 앞으로만 가던 나는 뒤로 회전하며 날리는 강한 킥에 명치를 맞고 자빠졌다. 숨이 멎을 것처럼 헐떡였다. 평정심은 사라지고 눈물, 콧물이 흘렀다. 그리곤 다시 일어서 돌격했다. 결과는 또 다시 자빠진 나의 패배. 이러니, 저러니 했어도 결국 품띠는 땄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태권도에 대한 애정도 사라졌다. 품띠를 맸어도, 평가인단의 동정심 때문에 받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의 의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얻어낸 결과물은 소중하지 않았다. 넘어져도 다시 돌격하는 나의 태도는 아름다웠지만, 어리석기 그지없는 행동이었다. 무식하게 달려 나가는 태도는 무얼 해도 최선을 다하는 성향으로 이어진 것 같다. 동시에 그렇게 하면 어떻게든 결과는 나온 다고 잘못 이해해버리기도 한 것 같다. 돌격과 쓰러짐의 반복이 계속 되고 나는 오랜 동안 매트 위에 얼굴을 맞댄 채로 살았다. 태도의 무게에 짓눌려 일어나지 못했다. 멍청하게 열심히 했던게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쥐덫이 되다니.
왜 한강진에서 쥐덫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약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 과정을 다시 훑어봐야겠다. 10분은 진작 끝났다.
세 번째 글쓰기도 지하철에서. 이번에는 한강진역에서 출발. 맥주로 시작해서 맥주로 끝났다. 나 말고는 다들 오랜만에 보는 날이었음에도 학부 때 마냥 재미있게 놀았다. 언젠가를 함께 한 사람들과 만날 때 나오는 대화 주제는 대부분 진부한 수순을 밟지만. 반가움의 표현, 근황 토크를 잇다가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얘기하기. 이건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마찬가지다. 그런 진부하기 짝이 없는 순서로 대화를 이어붙이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냥 그 때를 좋은 기억으로 함께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오는 길은 쓸쓸하다. 과거로부터 한 발자국씩 걸어가 점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져가는 모습. 그러다가 가끔씩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관계. 서로가 서로를 필요해하는 순간이 있어 다행이다. 누군가를 걱정해주는 일. 현실을 함께 하지 않기에 정치적일 필요도 없다. 까닭에 순수하게 느껴지는. 술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 정신은 아득해졌다가 돌아 왔다가를 반복, 눈은 껌뻑껌뻑. 스테인리스 등받이와 면 방석으로 뒤덮인 6호선에 몸을 맡긴 채.
무슨 말을 써야 할 지 혼란인 와중 10분이 지나갔다. 행복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