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랬지!”는 내 방식의 “사랑해”
“하지 말랬지!”는 내 방식의 “사랑해”
오늘도 잔소리했지만, 사실은 사랑이야
“엄마가 몇 번 말했어? 아침에 못일어난다고 일찍 자랬잖아.”
“학교갈 때 버스카드랑 우산 꼭 가지고 가”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세수하고 꼭 양치질 해.”
오늘도 나는 잔소리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도 그랬고, 그저께도 그랬다.
스스로도 안다.
이런 말들이 아이의 하루를 무겁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말하고 만다.
잔소리라는 건, 사랑이 입은 투박한 옷 같다.
좀 더 다정하게 말할 수 있을 텐데,
좀 더 기다려줄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왜 이토록 성급한 말로 마음을 던질까.
사실은 안다. 아침에 세수를 깜빡해도 괜찮고,
등굣길에 한두 번 지각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라는 걸.
그런데도 나는 그 사소한 것들에 자꾸 말을 얹는다.
왜일까.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건 ‘말 잘 듣는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작이 생활 습관이고, 작은 책임감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믿음을 전달하는 방식이 ‘잔소리’가 되어버린다는 거다.
엄마의 말이 설교처럼 들리고,
아이의 마음은 닫히고 만다.
며칠 전, 딸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나한테 맨날 뭐라고만 해. 나 잘하는 것도 많은데.”
그 말에 나는 멍해졌다.
정말 그렇다.
나는 아이가 잘한 일보다는 아직 미숙한 부분을 먼저 지적한다.
‘잘하고 있다’는 말보다
‘조심해’ ‘그렇게 하면 안 돼’가 먼저 튀어나온다.
칭찬은 마음속에서 몇 번 맴돌다가,
결국 말로 꺼내기 전에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나는 그날 밤 아이 방 앞에서 조용히 문을 열었다.
잠든 아이 얼굴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미안해. 엄마는 너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그 마음을 자꾸만 큰 소리로 표현하게 돼.”
그런데 그 마음, 아이는 모를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아이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엄마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그 안에 뭐가 담겨 있는지.
다만 듣는 방식이 마음을 아프게 할 뿐.
그래서 나는 요즘 작게 연습한다.
잔소리를 참는 연습. 말 대신 기다려주는 연습. 한숨 대신 손을 잡아주는 연습.
그리고 아이가 뭔가 잘했을 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말해주는 연습.
“너 그거 혼자 했구나, 대단하다.”
“오늘 말 예쁘게 했네, 엄마가 기분 좋았어.”
작은 문장을 꺼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그 문장이 아이의 마음을 열어준다는 걸 조금씩 배워간다.
나는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잔소리를 한다.
그걸 완전히 안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잔소리 한 뒤엔 꼭 덧붙인다.
“사실은 말이지… 그게 다 엄마 마음이야.”
“너 잘됐으면 해서 그래. 엄마가 너를 많이 사랑하거든.”
딸들도 안다. 잔소리는 곧 사라지지만, 사랑은 오래 남는다는 걸.
그래서 오늘도 잔소리를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미안. 그리고 사랑해.”
처음의 모든 순간, 그리고 지금의 너에게
느리게 피어도 향기 나는 삶을 꿈꾸는 ‘느린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