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공감의 방법

다름과 틀림

by azu nyaa


타인을 마치 자신과 같이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유사한 존재라도 물리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상대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무리인 이야기이다.



타인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다면 '하나처럼 느낀다'는 뜻의 '공감'이라는 활동은 어떤 것일까?


공감이란 타인에 자신을 투영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나와는 다른 존재가 처한 상황, 상대의 표정, 목소리 등을 통해서 만약 나라면 어떻게 느낄지를 상상하는 행위를 우리는 공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공감이란 어디까지나 나의 감정이지 상대의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나와는 다른 존재 즉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하기 힘든 상대에 공감하기 힘든 것이다.





당신은 다름과 틀림을 구분할 수 있는가?



두 단어 모두 대상 간의 차이가 존재함을 나타낸다. 차이점은 다르다는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 그 자체를 의미하는 데 반해 틀리다는 맞다 라는 기준이 존재하고 이와 같지 않은 상황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준의 유무가 나와는 다른 상대와 함께 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맞다는 기준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내 기준에 맞는 이야기만을 듣기를 원한다. 내가 믿는 것이 틀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욱이 그것이 양심을 찌르는 공익광고이건 싫어하는 정권의 소식이건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보를 전달했던 TV와 라디오와는 다르게 인터넷에서는 내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들을 수 있게 되면서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성은 사라졌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이 모인 공간이 눈앞에 존재하는데 불편함을 감수하고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류가 이루어지기 힘든 사회의 형태가 어느 때보다 심한 집단 간의 갈등의 원인일 것이다. 모두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고 '나라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위 문장을 부정할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날카로운 발톱도 이빨도 오래 달릴 수 있는 다리도 다지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 인간이 이뤄온 것은 함께 하였기에 가능한 일뿐이다.


모래로만 쌓은 담은 비에 쉽게 무너지고 돌로만 쌓은 담은 약간의 충격에 쉽게 붕괴된다. 그리고 이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을 모아도 담을 쌓을 수는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면 튼튼한 담은 쌓을 수 없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는 상대 또한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러한 나를 긍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내가 공감하는데 장애물이 된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강할수록 나를 투영시키는 것이 어려워지고 상대에 대한 감정이 일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자신을 긍정해주기를 바라는 이러한 흐름은 가속화될 것이다. 이것은 시대의 흐름이고 바꿀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를 투영하고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힘들다면 적어도 틀렸다고 단정 짓기보다는 다르다고 인정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슴으로 동의할 수 없어도 나를 잠깐 내려놓고 정보로써 이해할 수 있다면 친해질 수는 없어도 함께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접근이 급격히 변해가는 현대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공감의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하는 세상을 꿈꾸며...


2022.07.04

Instagram: @azu_nyaa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