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두︱시인᠊수필가
가슴이 가는 길
여름만 되면 설레게 하는 소리가 있었다. 아주 어릴 적 여름방학이면 ‘곤충채집’ 한다고 산으로 들로 다녔다. 그 시절 어린 방
학에는 산과 들 온통 그것뿐이었다. 그 시간이 익어가는 중학생
시절에도 여름이면 도시의 근교에 있는 유원지 숲길을 즐겨 찾아
갔다. 쩌렁쩌렁한 나무 그늘 밑을 누비고 다니면서 그 요란한 소
리에 마법 걸린 듯 다가가기를 즐겼다. 그런 기억을 지울 수 없었던지, 잊을 수 없었던지, 이후 데이트 코스로도 그 길을 종종 찾아가곤 했다.
여름날 요란한 소리의 추억은 세대가 바뀐 지금까지도 “까르르 까르르 맴맴” 들리고 있다. 그 소리가 노래가 되고 노래가 사랑이 되는, 사랑을 갈구하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내 가슴을 떨리게 하고 설레게 한다.
TV에서 ‘아아아아~ 아카시아 껌’도 ’‘아맛나’, ‘바밤바’, ‘부라보콘’ 아이스크림이 달콤한 사랑 노래를 부르던 감미로운 기억도 이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그 그리움을 잊을 수 없어 아직도 냉장고에는 추억의 아이스크림을 넣어 두고 있다. “까르르 까르르 맴메엠” 마른하늘에 어김없이 찾아오던 그 소리가 지금도 그리운 것은 푸릇푸릇한 날 황순원의 소나기가 이미 한차례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고, 이제는 사랑이 텅텅 빈, 그저 헛헛한 가슴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보면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가 버린 성장의 시간이었다. 이제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사람들, 그들 세대의 사랑, 그 사랑이 어디 있는가? 이제는 까마득한 기억뿐이고 현실은 닫힌 문, 갇힌 방, 격리된 공간뿐일 것이다. 독립된 틈뿐일 것이다. 안을 더듬어도 주위를 휘저어도 만질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틈이다. 그저 정염만이 고요한 공간이다. 오랜 시간 동안 사용치 않아 붉게 변색 된 고철 덩어리 같은, 이 연민이 그 사랑이었나?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스라한 이야기일 뿐이다. 이제 그 사랑은 이미 한 몸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한 몸, 원초적인 애정이 점유한, 몸뿐이다. 하와(Eve)는 이미 아담(Adam)의 속으로 들고 만 것이다. 아담은 태초의 그일 뿐이다.
소리의 공간, 하늘을 들여다본다. 아무리 봐도 마른 가슴만큼이나 하늘도 말랐다. 저 마른하늘에다 팔을 뻗어 선이라도 하나 쭈욱 그어놓고 그곳에 그토록 간절하든 소리하나 걸쳐 놓고 싶다. 그리고는 소리치고 싶다. 울어라. 울어라. “까르르 까르르 맴메엠, 까르르 까르르 맴메엠” 울어 나 봐라. 이 사랑에 젖은, 결코 쉽사리 표현해낼 수 없는 꿈같은 생각 하나 걸쳐 놓고 울어 나 봐라. 소리하나 걸쳐 은근히 유혹하는 소리, “까르르 까르르 맴메엠” 내어 나 봐라.
“날마다 하늘을 말리는,/여름에 줄 하나 그어놓고//내 가슴 표식 같은/소리 하나 걸쳐 놓는다//이 솔직한 마음/얼마나 여름을 울릴지/지난여름에도 울었고/까마득한 기억에도 울었다//끝내 전설은 귓속에 들어앉아/계절을 무시한 채 홀로 살더니만/올여름 또 쉐한 소리가/짝도 못 찾고 못 찾다가/급기야 어느 구멍이라도 숨어들 거다//걱정은 마냥 침묵하는데/어느새 아무 사이로 파고들어/벌써부터 자리 잡았다 소리할 거다”
「가슴이 가는 길」 전문
세상천지에 늘려있는 생각 하나쯤 저 줄에 걸려 푸념하듯 털털털거렸으면 좋겠다. 이는 나만의 생각인가? 살아있는 육신의 본능인가? 고요의 외침인가? 아니야, 제도와 관습에 옭매인 현실이다. 저 한쪽으로의 기피 아니 도피하고픈 순간이 지평선 끝 이글거리는 지열처럼 펄펄거린다.
세상이여. 아,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생각이 관념에 불쑥 빠져든다. 이미 내 것이 되어버린 사랑 하나, 이미 그림자가 되어 환영으로만 남은 사랑 말고, 그것 말고 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사랑을 쥐고 싶은 이율배반적인 감정이란 이런 것인가?
그런 상념 젖은 삶에 지난여름, 그 전 아니 까마득한 기억으로부터의 소리가 맞겠다. “까르르 까르르 맴메엠”거리는 매미 소리의 그 원초적 간절함을 듣고는 이미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 한 마리의 매미가 죽기를 각오로 제 본능을 갈구하는 저 처절한 울음소리를 들어 보라.
저것이 사랑을 갈구하는 우리네 사랑 보다 훨씬 솔직하고 진정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순수하고 담백한 사랑만이 사랑이란 말인가? 차라리 온몸으로 갈구하는 저 매미의 소리가 더 정직하고 순수한 것인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어찌 저토록 간절하고 저토록 본능에 솔직하단 말인가?
우리네 사랑, 어리면 어려 안 되고 나이 들면 들어 안 되고 기혼이면 기혼이라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 텅텅 빈 빨랫줄 같은 사랑의 자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어쩌다 짐승처럼 끌리는 것이 있어도 차마 말 못하고 답답한 가슴 쓸어내리고 마는 것 아닌가? 그러다 아무라도 붙잡고 하소연하듯 매달려 흉내만 내고 마는 그런 저급한 후미끼리(ふみきり,건널목) 동네 이야기가 되고 마는 것인가.
그렇지 못할 바엔 그냥 아무 곳이라도 은밀한 구멍 하나 있기라도 하면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 은신해야 하는가? 은거해야 하는가? 영원히 전설이 되어 울고 있을 소리가 되고 말아야 하는가?
아᠁᠁ 계절을 망각하고 가여운 소리로 사시사철 “까르르 까르르 맴메엠” 울고 있는 소리의 존재로만 남는다니, 이 어찌 슬프지 않으리, 나는 아무 곳이라도 기생하는 소리가 되기 싫다. 이명(耳鳴)의 존재가 되긴 싫다. 그 강한 몸부림이라도 치고 있는 것은 아직 삶의 임무가 남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보이는 것은 언제나 현실뿐이고 보이지 않는 삼 분의 일 정도만이 다른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 그뿐이다. 언젠가 기억, 그마저도 겨우 몇몇 전설의 이야기로만 남아 아무 귓속이나 귀찮게 하는 소음이 될 것이다. 오늘의 소리가 내일의 소음이 되어 “까르르 까르르 맴메엠” 울고 있을 것이다.
가슴이 가는 길
이성두
여름만 되면 설레게 하는 소리가 있었다. 아주 어릴 적 여름방학이면 ‘곤충채집’ 한다고 산으로 들로 다녔다. 그 시절 어린 방
학에는 산과 들 온통 그것뿐이었다. 그 시간이 익어가는 중학생
시절에도 여름이면 도시의 근교에 있는 유원지 숲길을 즐겨 찾아
갔다. 쩌렁쩌렁한 나무 그늘 밑을 누비고 다니면서 그 요란한 소
리에 마법 걸린 듯 다가가기를 즐겼다. 그런 기억을 지울 수 없었던지, 잊을 수 없었던지, 이후 데이트 코스로도 그 길을 종종 찾아가곤 했다.
여름날 요란한 소리의 추억은 세대가 바뀐 지금까지도 “까르르 까르르 맴맴” 들리고 있다. 그 소리가 노래가 되고 노래가 사랑이 되는, 사랑을 갈구하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내 가슴을 떨리게 하고 설레게 한다.
TV에서 ‘아아아아~ 아카시아 껌’도 ’‘아맛나’, ‘바밤바’, ‘부라보콘’ 아이스크림이 달콤한 사랑 노래를 부르던 감미로운 기억도 이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그 그리움을 잊을 수 없어 아직도 냉장고에는 추억의 아이스크림을 넣어 두고 있다. “까르르 까르르 맴메엠” 마른하늘에 어김없이 찾아오던 그 소리가 지금도 그리운 것은 푸릇푸릇한 날 황순원의 소나기가 이미 한차례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고, 이제는 사랑이 텅텅 빈, 그저 헛헛한 가슴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보면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가 버린 성장의 시간이었다. 이제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사람들, 그들 세대의 사랑, 그 사랑이 어디 있는가? 이제는 까마득한 기억뿐이고 현실은 닫힌 문, 갇힌 방, 격리된 공간뿐일 것이다. 독립된 틈뿐일 것이다. 안을 더듬어도 주위를 휘저어도 만질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틈이다. 그저 정염만이 고요한 공간이다. 오랜 시간 동안 사용치 않아 붉게 변색 된 고철 덩어리 같은, 이 연민이 그 사랑이었나?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스라한 이야기일 뿐이다. 이제 그 사랑은 이미 한 몸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한 몸, 원초적인 애정이 점유한, 몸뿐이다. 하와(Eve)는 이미 아담(Adam)의 속으로 들고 만 것이다. 아담은 태초의 그일 뿐이다.
소리의 공간, 하늘을 들여다본다. 아무리 봐도 마른 가슴만큼이나 하늘도 말랐다. 저 마른하늘에다 팔을 뻗어 선이라도 하나 쭈욱 그어놓고 그곳에 그토록 간절하든 소리하나 걸쳐 놓고 싶다. 그리고는 소리치고 싶다. 울어라. 울어라. “까르르 까르르 맴메엠, 까르르 까르르 맴메엠” 울어 나 봐라. 이 사랑에 젖은, 결코 쉽사리 표현해낼 수 없는 꿈같은 생각 하나 걸쳐 놓고 울어 나 봐라. 소리하나 걸쳐 은근히 유혹하는 소리, “까르르 까르르 맴메엠” 내어 나 봐라.
“날마다 하늘을 말리는,/여름에 줄 하나 그어놓고//내 가슴 표식 같은/소리 하나 걸쳐 놓는다//이 솔직한 마음/얼마나 여름을 울릴지/지난여름에도 울었고/까마득한 기억에도 울었다//끝내 전설은 귓속에 들어앉아/계절을 무시한 채 홀로 살더니만/올여름 또 쉐한 소리가/짝도 못 찾고 못 찾다가/급기야 어느 구멍이라도 숨어들 거다//걱정은 마냥 침묵하는데/어느새 아무 사이로 파고들어/벌써부터 자리 잡았다 소리할 거다”
「가슴이 가는 길」 전문
세상천지에 늘려있는 생각 하나쯤 저 줄에 걸려 푸념하듯 털털털거렸으면 좋겠다. 이는 나만의 생각인가? 살아있는 육신의 본능인가? 고요의 외침인가? 아니야, 제도와 관습에 옭매인 현실이다. 저 한쪽으로의 기피 아니 도피하고픈 순간이 지평선 끝 이글거리는 지열처럼 펄펄거린다.
세상이여. 아,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생각이 관념에 불쑥 빠져든다. 이미 내 것이 되어버린 사랑 하나, 이미 그림자가 되어 환영으로만 남은 사랑 말고, 그것 말고 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사랑을 쥐고 싶은 이율배반적인 감정이란 이런 것인가?
그런 상념 젖은 삶에 지난여름, 그 전 아니 까마득한 기억으로부터의 소리가 맞겠다. “까르르 까르르 맴메엠”거리는 매미 소리의 그 원초적 간절함을 듣고는 이미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 한 마리의 매미가 죽기를 각오로 제 본능을 갈구하는 저 처절한 울음소리를 들어 보라.
저것이 사랑을 갈구하는 우리네 사랑 보다 훨씬 솔직하고 진정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순수하고 담백한 사랑만이 사랑이란 말인가? 차라리 온몸으로 갈구하는 저 매미의 소리가 더 정직하고 순수한 것인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어찌 저토록 간절하고 저토록 본능에 솔직하단 말인가?
우리네 사랑, 어리면 어려 안 되고 나이 들면 들어 안 되고 기혼이면 기혼이라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 텅텅 빈 빨랫줄 같은 사랑의 자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어쩌다 짐승처럼 끌리는 것이 있어도 차마 말 못하고 답답한 가슴 쓸어내리고 마는 것 아닌가? 그러다 아무라도 붙잡고 하소연하듯 매달려 흉내만 내고 마는 그런 저급한 후미끼리(ふみきり,건널목) 동네 이야기가 되고 마는 것인가.
그렇지 못할 바엔 그냥 아무 곳이라도 은밀한 구멍 하나 있기라도 하면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 은신해야 하는가? 은거해야 하는가? 영원히 전설이 되어 울고 있을 소리가 되고 말아야 하는가?
아᠁᠁ 계절을 망각하고 가여운 소리로 사시사철 “까르르 까르르 맴메엠” 울고 있는 소리의 존재로만 남는다니, 이 어찌 슬프지 않으리, 나는 아무 곳이라도 기생하는 소리가 되기 싫다. 이명(耳鳴)의 존재가 되긴 싫다. 그 강한 몸부림이라도 치고 있는 것은 아직 삶의 임무가 남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보이는 것은 언제나 현실뿐이고 보이지 않는 삼 분의 일 정도만이 다른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 그뿐이다. 언젠가 기억, 그마저도 겨우 몇몇 전설의 이야기로만 남아 아무 귓속이나 귀찮게 하는 소음이 될 것이다. 오늘의 소리가 내일의 소음이 되어 “까르르 까르르 맴메엠” 울고 있을 것이다.
이성두, 대구출생, 대구 거주
현대시선 시 부문 신인문학상
현대문예 수필부문 우수작가상
제50회 코벤트가든 문학상 외
시집: 제4집 『바람의 눈빛으로』
동인지: 『캘리그래피 시화집』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