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수님이여

죄의 삯

이성두︱시인᠊수필가


나의 예수님이여


의자에 앉아 있던 아내의 표정이 이상했다. 왜 그러지? 순식간에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두 팔에 힘을 주며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일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표정이 너무 일그러져 장난 같지는 않았다.

“여보! 여보! 어디 아파?” “아파?, 어디야. 어디 아파?”

다급하게 물어도 끝내 대답은 없었다. 숨, 숨 돌릴 틈도 없었다. 그러자 곧장, 의자에서 스르륵 미끄러지듯 주저앉아버렸다.

다급히 흔들어도 점점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눈빛이 흐려지며 닫히려는 것으로 보아 정신마저 혼미해져 가는 듯했다. 나는 그 어떤 선택도 떠오르지도 않았고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119에 긴급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났다. 세상이 하얗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찰나의 순간, 나도 나를 잃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냥 멍한 상태였다. 그저 본능적으로 전화를 한 것뿐이었다.

처절하게 긴박한 순간, 119대원이 핸드폰으로 질문을 시작했다. 뭐라고, 뭐라고, 하염없이 물었다. 당시 무엇을 물었던지 뭐라고 대답했는지 그때 기억이 아직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119대원은 정신없이 물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보이는 대로 답했을 뿐이었다. 다만. 지시하는 대로 순순히 응했을 뿐이었다. 급기야 아내는 입에서 거품을 뱉어내기 시작했고 나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그렇게 삶과 죽음의 순간이 힘겨루듯 파르르 떨고 있는데, 석화광음 같은 순간에 119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출현했다. 비상 사이렌 소리를 내면서 경북대병원 응급실 쪽으로 갔다. 그날, 그 시간에는 대구 동쪽과 서쪽을 가로지르는 달구벌 도로의 교통량은 정체되고 있었다. 길도 숨쉬기 힘들 정도로 꽉꽉 막혔다. “아아, 인도라도 올라라, 올라.” 갈 수만 있으면 어떻게라도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순간 긴급자동차 사이렌 소리에 계가한 바둑판같이 꽉 막힌 도로에서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로 인해 한참이나 소요될 응급실까지의 거리를 불과 10여 분 만에 도착했다. 응급실에서 진단은 뇌출혈이었고, 적절한 응급조치 후 즉시 수술에 들어가야 했다. 더 말할 수도 할 말도 필요치 않았다. 모두 침묵했다. 중압감과 수술대기실에서의 긴장, 초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마치 어두움의 좁은 공간 속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목구멍에 침 넘어가는 소리도, 숨소리조차도 내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그때가 세상의 산지옥이지 않았을까.

아내는 종전부터 항응고제를 처방하고 있는 환자라 수술 중 지혈의 문제가 있을까 봐 즉시 수술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큰일 났다. 생과 사의 고비를 다투는 환자인데 이를 어쩌나 가슴이 파닥거리며 뛰고 있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결국 6시간이나 지나서야 겨우, 그날 수술의 마지막 시간에 수술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벽마저도 경직된 밤늦은 시간, 삭막한 수술대기실에서의 기다림도 뻣뻣하기만 했다. 모든 기도의 소리는 딱 한 마디뿐이었다. “제발, 제발” 그뿐,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얼어버린 긴 시간 후 드디어 아내의 모습이 수술실에서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잠시 이동 침상을 놓칠까 봐 붙잡고 따라가면서 아내의 모습을 보고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카락이 없는 민머리에 부착한 이상한 장비는 마치 메두사의 머리카락 같았다. 고통 속에 억압된 그 몇 시간 동안 시달린 얼굴은 의식도 없이 울고 울어 퉁퉁 부어 있었다. 단단한 머리뼈를 뚫는 진동과 기계음 소리 속에서 고통을 참고 견디어 낸 모습이었다. 두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차마 말문을 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바라바보다 더 못난, 바라바보다 더 못된

내 죄를 몽땅 안고 아내가 쓰러졌습니다

보라고 봐야 한다고 내 눈앞에서 쓰러지고서 야

관절 하나 없는 세상 허재비도 끝내 무너지듯 꿇고

경직된 시월의 밤에 갇힌 벽마저 흐느꼈습니다

팔다리 묶는 바쁜 발소리들은 골고다 언덕을 향하듯

빡빡 민 머리에 재갈을 물리고

죄의 삯을 끄집어내는 일,

그 일은 세상을 지우는 일이었습니다


가시면류관으로 꽁꽁 묶은 머리에는 피가 흐르고,

감긴 눈에는 눈물이 흐르던 밤

적막에 매달린 슬픔엔 온통 핏빛뿐이었습니다

울며 기도하고, 엎드려 빌고,

애꿎은 벽만 두드리던 밤

꺼억꺼억 멈추지 않는 소리, 절제하지 않는 소리.

아! 내가 잘못했다고, 내 죄라고, 제발 용서해 달라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죄악들을 눈물로 씻었습니다

죄의 삯이 회개의 삯 되어 천정의 뱀이 사라졌습니다

소리를 찾고 기억을 찾고 믿음마저 찾은 41개월 지난

오늘, 아내는 캘린더에서 생일도 찾아냅니다

때마다 휠체어에 앉은 표정 없는 옆모습이

영판 예수님입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마저 꼬옥 예수님입니다

아내는 생일을 찾고 나는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내게 선악을 알게 하고, 지난 일을 회개하게 하고

감사함을 깨닫게 하고, 간절한 믿음을 갖게 한 아내

당신은 당신의 몸으로 비로소

내 믿음을 찾게 한 예수님입니다.

-나의 예수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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