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 속으로
이성두︱시인᠊수필가
얼마나 궁색한 소리를 흘렸던가?
그래, 그랬지. 알게 모르게 새어 나오는 숨소리처럼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궁색의 변명을 추스려본다.
그해 은행잎이 동대구로를 노랗게 물들일 때, 성질 급한 잎은 채 익기도 전에 인내하지 못하고 저혼자 툭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 날에 내 사람이 오그라드는 살갛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마치 마른 은행잎처럼 파르르 거리며 쓰러졌다.
세상의 모든 경계는 선 하나에도 미치지 않는 것 아닌가.
잠 자다가 일어나지 못하고 그냥, 피안에서 차안의 세계로 순간에 접하기도 한다.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는 과연 있는 것인가?
눈 깜빡임일 뿐이다. 그래 그렇다. 찰라다.
죽고 사는 것이 찰라일진데 어찌 세상 모든 사소한 일들이야 찰라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내 사람이 쓰러지고 의식을 잃어버린 시간 동안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갈등으로 부르르 떠는 순간이었다.
뇌출혈이다. 기준도 없이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산다.
결과는 각자의 몫이다.
우리는 죽지도 살지도 못한 경계에서 몇 주를 버텨야 했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있다면 오로지 기도 뿐이었다.
내 평생 그토록 처절한 기도를 해 본적이 없다. 벽을 향한 애꿎은 두드림, 무명을 노려보는 응시와 벽을 향한 소리, 소리가 파르르 떨었다.
그곳에는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만 있어 아무도 알아 들 수도 알 필요도 없었다. 지난 죄악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눈물이 육신을 삼킬 지경이었다.
이것은 환상처럼 이어졌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사람 곁을 떠나지 않는다라는 언약을 궤에다 마구 집어넣으며 나를 담보하였다.
그래도 세월은 현실을 흔들고 미래를 유혹하곤 했지만
이미 삼켜버린 무기력이 현실을 배제시키고 있었다.
누운 자와 지키는 자만 있는 삶이. 시작되었고, 그 기간이 무릇 칠 년이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누운 자와 지키는 자만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다음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