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니지 않은 이야기

그대, 잊었느뇨




어느 날 비 온 뒤

겨울 안개 같은 여운이 스친다 했는데

문득 만년의 스산함인가

뺨을 더듬던 가을바람이

묵은 기억을 고스란히 챙기네

살그머니 느껴지는 감촉이

어찌 비단결 같아

돌돌 말렸던 시간은 절로 풀리고

미미한 바람에도 이는

푸른 깃발처럼

거부할 수 없는 길을 쫓는다

토실한 감촉이 갸웃갸웃거리는

큰길 가까운 골목이 넓어서인가

고요에 경직된 차 소리는 아직도 담벼락에 걸려있고

달빛에 취한 어둠은 묵은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였네

그런 날, 빨갛게 이쪽으로 기울던 가위손도 사라지고

이미 경이로운 변검술도 멈추었으나

왠지 아련한 그 모습이

어색하고, 생경하고, 어렴풋해

예픈 것은 네가 짧은 탓일까

골목 어귀 소풍에서 부르는

낭만에 대하여 노랫말에

눈물이 글썽인 것도 17년이 짧아서였나

달콤하니 사라진 헛헛한 세월 때문이었나

이제, 소풍도 소풍을 가고 없건만

행여 허공에 더께라도 쌓여

벌거벗은 그리움이 펑펑 쏟아지기라도 하면

검은 외투가 후드득 몸서리치는

펄펄 날리는 하얀 겨울이 아직도 서 있을 것이려니

새삼이라도 거기 안긴 따뜻한 소리쯤

찾을 수 있을까, 느낄 수 있을까

살그머니 닿으려는 노스텔지어 갈망이라도 있으면

눈 펑펑 쏟아져 울산 길 막힌 날

되돌린 위화도 회군처럼

이룸이 이루미로 뜨겁게 벼루고

신과 세상과 별과 달과 여인과 시인과

그런 어울림으로 사는 나는

진작 코발트 빛 나이를 심었다

시간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내 남은 추억은 어디서 만날까

감은 눈으로 되새기노니

아스라한 시간 위에서 녹아내리는 그리움뿐이네

한창 바빠서 먼데 보고 있을 청춘은

아직, 알까 모를까


너는 잊었느냐 지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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