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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번째 편지 - 위로

여름밤

by 여름밤의 테드
위로


차가운 겨울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의 짧은 망설임. 이불 속 따스함을 놓아주기가 아쉽지만, 햇살이 비치는 창가의 커피 향이 부드럽게 코끝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 작은 향기 하나가 하루를 시작할 힘을 줍니다. 마치 숨겨진 보석처럼,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작은 위로들이 우리를 지탱해 줍니다.

분주한 아침, 정신없이 준비를 하다가 문득 발견하는, 아이가 써놓은 “엄마 사랑해”라는 메모. 삐뚤빼뚤한 글씨체마저 사랑스러워,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그 작은 메모 한 장이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할 만큼 큰 위로가 됩니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밤이 찾아왔습니다. 피곤에 지쳐 몸은 무겁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책장을 넘기는 시간. 익숙한 선율과 책 속의 이야기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줍니다.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주는 이 시간들이, 오늘 하루의 모든 고단함을 녹여줍니다.

친구와의 따뜻한 통화,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예쁜 꽃 한 송이, 고마운 사람의 한마디.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삶의 작은 위로들입니다. 때로는 너무나 사소해서 눈에 띄지 않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테드님, 안녕하세요. 편지친구 여름밤입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나지 않았나요? 간만에 일찍 나타나서 조금 의기양양 해졌어요! 오랜만에 주말을 큰 일정없이 보냈는데 구름으로 꽉 차 흐렸던 오늘의 날씨가 어쩐지 편지를 쓰고 싶게 만들어 빠르게 편지를 써봤어요. 기쁘게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한테는 상당히 어려운 내용의 철학책을 최근에 읽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집에서는 읽히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북카페에 가서 나름대로 열심히 읽고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이번 주말처럼 미세먼지도 없고 온도도 적당한 날이 계속 지속됐으면 좋겠어요.
짧게 말씀드린 것과 같이 어제는 등산을 즐기고 왔어요. 사실 등산 난이도 하에 가까운 아차산에 다녀왔기 때문에 실제로 등산한 시간보다 밑에 내려와 먹고 마시는 시간이 훨씬 길었지만 어찌됐건 평일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즐거웠던 시간이었답니다. 요즘의 저는 평일은 아예 회사와 한 몸이 된 수준으로 일을 하고 있어요.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면 밀린 저만의 일상루틴을 해야해서 어떠한 잡념이 끼어들 틈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답니다. 그래서 온전히 저한테 집중할 수 있는 주말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구요. 테드님은 강원도로 여행가신다고 했는데 어디로 가신걸까요? 최근에 양양으로 촌캉스도 다녀오셨다고도 하니 이번에는 어디로 가셨을지 궁금해져요. 주말에 강원도 가는 길은 도로가 정말 막히던데 부디 차에서 많은 시간을 안보내셨길 바랄게요.



개인적으로 저는 강원도를 정말 좋아해서 1년에 최소 2번은 강원도로 여행을 가고는 해요. 강원도에 친구가 살고 있기도 해서 더욱 자주 가게 되더라구요. 지난 가을에 동해로 여행을 다녀왔었는데 묵호역이라는 작은 역에서 기차를 탔었어요. 서울에서 묵호를 오가는 기차를 탈때 좌석 방향을 잘 앉으면 정동진 부근에서 기차가 바다 바로 옆으로 지나가게 되는데 창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이 정말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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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때문에 그 기차를 또 타고 싶을 정도로 너무 멋지더라구요. 그리고 동해 자체도 작은 도시여서 시끄러운 도시 소음에서 벗어나 한적함을 느끼기에 좋은 여행지였어요. 강원도 여행을 가셨다고 하니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말씀드려봅니다. 테드님께서 여행을 다니며 쓴 글이 A4용지 500장 이상이 된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꾸준히 쓰고 계실까요? 엄청난 양이라고 생각해서 여행에세이를 내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여행가면 늘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냥 달랑 일기 몇 줄만 쓰고 말아서 문득 반성하게 됐어요..! 돌이켜보면 그 때 여행지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 당시에 적어야 상세하게 적을 수 있지 나중에 생각하려고 하니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혹시나 괜찮으시다면 여행지에서 테드님이 쓴 글을 한 구절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여유가 되실때 한 번 보여주신다면 저도 따라서 써보고 싶어서요. 기록의 소중함을 나날이 느끼고 있는 요즘이에요.



테드님의 4월에 관한 치열한! 이야기도 잘 읽어보았어요. 러닝하기 정말 좋은 날씨겠어요. 날이 점점 더워지면 더위도 더위지만 벌레가 장난아니라고 언뜻 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러닝이라고 하기도 민망하지만 2년 전쯤 뛰어본적은 있어요. ‘아무튼, 달리기’라는 책을 읽고 나도 한 번 뛰어봐야겠다고 생각에 에어팟이랑 운동화까지 샀는데 딱 두 번 뛰고 말았어요. 날이 점점 추워져서 못뛰겠더라구요…. 월에 200km를 뛰어야하는 테드님의 챌린지가 엄청난 숫자로 저한테는 다가오기는 하는데 시작한 김에 하프마라톤까지 뛰셨다는게 더 놀라워요. 그리고 잠실롯데타워 계단오르기는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본 기억이 나는데 29분만에 올라가셨다니..! 기록을 단축했을때 그 성취감이 엄청났을 것 같아요. 저는 올라간다는 상상만으로도 제 다리가 괜히 아파오는 것 같지만 테드님은 크로스핏으로 다져진 체력이 있어서 가능한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성실함과 체력이 뒷받쳐주기 때문에 야근을 마치고나서도 뛰실 수 있었을거구요. 오히려 크로스핏을 쉬는 동안 러닝도 시작하고 이런저런 일상을 즐길 수 있어 다시 크로스핏으로 복귀할 수 있지않았나, 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동안 해온게 아까워서 억지로 붙들고 있었다가 더 큰 권태에 빠질 수도 있었을지도 몰라요. 목표는 내 상황에 맞춰서 수정해나가면 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얻는 내 생각과 감정이 더 소중할 수 있으니깐요. 어떤 방향으로 가더라도, 조금 돌아갈지라도 그 길이 테드님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일단 예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빡센 4월로 인해 운동도 거의 못할 정도로 모든 것이 잠시 일시정지가 되었는데요. 조금씩 다시 제 일상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발레는 다행히 등록을 했는데 조금 신기하게 등록을 했어요. (저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집 근처에 발레학원이 없는 관계로 20분이 넘게 걸어야하는 곳으로 상담을 갔었는데요. 발레는 너무 하고 싶은데 생각보다 왔다갔다하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내가 빠지지 않고 잘 다닐 수 있으려나 고민했거든요. 그래서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아, 우리 집 근처에 발레 학원 생기면 바로 등록할텐데!’ 라고 생각하고 집 근처 건물에 새롭게 발레학원이 들어서는 상상을 가볍게 했어요. 그리고나서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검색을 해봤거든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집 근처에 새로운 발레학원이 생겼어요. 게다가 5월 중순부터 오픈한다며 이벤트까지 하고 있어서 제가 잡아둔 예산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등록하게 되었어요. 혼자 신기해하면서 그 날 바로 등록까지 마쳤어요. 발레를 시작한 후에 어떤지 말씀드릴게요!



테드님만의 크리스마스 추억을 읽으면서는 제가 다 감동받았어요. 10년동안의 꾸준한 봉사활동이 담긴 테드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제가 성인이 되고난 후의 크리스마스를 돌이켜봤어요. 저는 스키장에 놀러갔다던지, 좀 더 어렸던 때에는 친구들과 클럽에 놀러갔다던지 기억에 남는게 그런 것들이라서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저에게 크리스마스가 더 특별함이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별함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인데 내가 감흥없다고 그냥 그렇게 보내버린건가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테드님처럼 남들에게, 아니면 주위 사람들에게라도 따뜻함을 나눠주는 기억들이 쌓이면 크리스마스가 더 다채로워지겠죠? 많은 아이들에게 테드님이 소중한 존재로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아 부러운 마음도 듭니다! 저도 올해 크리스마스부터는 조금 더 의미있게 보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따뜻한 이야기를 공유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그나저나 제가 영화나 책이야기를 자주 등장시키는데 잘 봐주시고 나중에 이야기를 해주셔서 제가 더 신나서 이야기를 하나봐요. 사실 추천받더라도 나중에 봐야지, 하고 잊어버리는 경우도 굉장히 많잖아요. 저는 미루기 천재라 테드님의 이런 적극적인 추진력은 제가 정말 본받아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편지를 마치기 앞서 섭섭하실 수도 있으니, 짧게 영화 이야기를 하나만 해볼게요. 저는 오랜만에 자기 전에 책을 읽지않고 영화 한 편을 보고 자려고 해요. 러브레터 감독인 이와이 슌지의 ‘4월 이야기’라는 영화가 있는데 어쩐지 오늘 북카페에 있으면서 너무 보고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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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 번 정도 이미 봤는데 여자주인공이 집을 떠나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사실 대단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을 울릴만큼 큰 감명을 준 것도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분위기가 봄에 느낄 수 있는 설렘에 부합하고 러닝타임도 1시간으로 길지않아 가끔 가볍게 보고 싶을때 생각나더라구요. 다 보고나면 저의 스무살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저는 오늘 느낀 이 감정을 이어가기 위해 편지를 보내고 4월 이야기를 보면서 일요일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내일부터는 또 많이 바쁘겠지만 내일은 내일의 제가 해낼 수 있을테니깐요! 테드님은 아직 강원도이실 수도 있고 아니면 집에서 여독을 풀고 계실 수도있을텐데 제 편지를 보시게 된다면 다가오는 한 주도 힘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다음 편지때 뵐게요!



25. 04. 27, 여름밤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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