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란을 기다리며
임신을 준비하면서 크게 3가지에 대한 불안감을 가졌다.
첫째는 언제 천사가 찾아올까.
둘째는 임신이 된다 하더라도, 건강하게 잘 출산할 수 있을까.
셋째는 엄마가 되는 내 삶은 괜찮을까.
그중 첫 번째 모든 일의 시작. 언제 천사가 찾아올까.
이 모든 게 와닿는 건 배란일에 맞춰 숙제(?)를 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임신과 출산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맘 카페 가입과 관련 서적을 찾아 읽는 것.
임신 준비-임신 후 주차별 정보- 출산과 그 후
단계별로 나와 있는 정보를 읽고 공부했고, 임신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단어와 내용을 배웠다.
- 배테기(배란테스트기)로 확인해서 숙제(성관계)를 하는 것이 중요!
- 생리불순이라면, 병원에 가서 초음파와 난포 주사 맞는 것도 방법!
- 이 외, 난임의 정의(35세 미만의 여자일 경우, 1년 이상 자연스러운 관계로도 임신되지 않을 때), 배란 점액 확인, 화유, 아기 주차 세는 법, 보건소 산전검사 등
쿠팡을 통해 배란테스트기와 임신테스트기를 구매했고, 첫 한 달에 테스트를 했다.
천사를 만나는 건 하늘의 뜻이지만, 그 길을 터놓는 건 확률 싸움이었다.
임신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난자와 정자가 만날 확률을 높이는 배란일을 알아내는 것.
다행히 나는 생리주기가 규칙적이었기에 테스트기를 활용한 배란일 확인이 가능했다. 만약 생리주기가 불규칙적이거나 다낭성 난소증후군이 있다면 테스트기 활용보다는 산부인과에서 날짜를 확인하는 걸 추천한다.
배란테스트기는 생리가 끝난 후부터 매일 동일한 시간에 테스트기를 통해 두 줄 여부를 확인하고, 온도계가 있다면 기초체온도 함께 기록한다.
테스트기의 선이 1줄인 음성에서 굵은 2줄인 양성이 되면 곧 배란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소위 말하는 배란일 피크)
연애할 때 임신을 피하고자 배란일을 피해 관계한 적은 있어도, 일부러 배란일을 찾아 정확히 관계를 한 적은 없었다. 평소 하던 행동을 갑자기 반대로 해야 하니 기분이 묘했다.
평소엔 미련 없이 보낸 버스였는데, 이젠 한 번만 문 열어달라며 버스 문을 잡고 매달리는 느낌이랄까.
매일 두 줄을 간절히 기다리며 변기에 앉아 소변을 받으며 강한 현실 자각 타임이 욌다.
'드디어 내가 임신 고대하는구나.'를 깨닫는 계기였다.!
또한, 관계를 나누며 부부 개인의 유희 대신 묘한 부담감을 느꼈다. 일정에 맞춰 일정한 행위를 나누는 것이 낯설었는데, 아무래도 관계를 가지는 목적의 우선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난자와 정자가 만날 수 있도록 필요한 사정의 행위'를 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로 등극했기에.!
"오늘 저녁엔 해야 해.", "내일까진 해야 하는데, 많이 안 나오는 거 같아."
왜 숙제라는 표현을 썼는지 알 만큼 어색한 표현으로 대화를 나누며, 의무감이 더해진 반복은 어색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심경이었다. 관계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 관계가 끝난 후의 막연한 불안감과 기대.
그 감정의 반복은 파도처럼 밀려서 생리 전까지 기분을 들쑥날쑥하게 만들었다.
생리를 하기 전 2주 동안 임신이 되었을지에 대한 기대와 불안으로 내 몸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착상이 될 때 격한 운동을 해도 될지 걱정하며 검색해보고, 매주 나가는 필라테스도 쉬었고,
몸의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신경 쓰고 받아들이게 된다.
생리 예정일까지 못 기다리고 임신테스트기를 했다가 단호박 한 줄이 나오는 걸 보고 한숨 쉬기도 했다.
그리고 생리 예정일. 난 규칙적인 생리를 했기 때문에 홍양(생리를 뜻함)을 바로 마주했다.
대부분 처음 임신 준비를 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내가 임신을 피했기 때문에 임신이 안된 것이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바로 임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연히 한 방에 되겠지 싶던 기대가 무너졌고, 또다시 같은 일을 해야 하는 것에 큰 실망을 했다.
이제 내 캘린더는 다시 생리와 배란 일정을 중심으로 확률을 높이기 위한 계산을 할 테고,
내 생활은 다시 한 달간 내 몸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실망으로 반복되는 행위를 해야 한다.
또한, 출산예정일도 한 달 미뤄지게 될 것이다. 그럼 내가 계획했던 자격증 시험과 내 커리어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일로 반복하는 것은 때론 고되다.
하지만 임신하고 싶은 마음을 먹고, 이를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
임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만족을 해야 할지.
그럼에도 내 감정과 나를 우선하던 일들이 자꾸만 뒤로 밀리는 과정이 비참하기도 하다.
나는 나 자신을 가장 좋아하고 내 시간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계획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계획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그만큼 불확실한 것에 불안함을 느낀다.
35세 미만의 여성에게 난임이란 1년 동안 자연스럽게 관계를 가지며 아이를 갖고자 노력했음에도 되지 않을 때를 의미한다. 12개월 시도 중 11개월 실패하고 마지막 1개월에 임신을 해도 그건 임신이 된 것이지, 늦은 임신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막연한 걱정이 되었고, 아직 젊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우리가 모르는 어떤 문제가 있진 않을까.. 란 어두운 상상도 하게 된다.
아직 첫 시도지만, 오롯이 내 몸에 기대는 것이 이렇게 불안한 일일 줄 몰랐다.
내 생각대로 움직이고 내 의지가 없인 아무것도 아닌 팔로워일 줄 알았는데, 임신 계획에 있어서 내 몸은 내가 눈치 봐야 하는 내 상사였고 시키는 대로 하게 만드는 리더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젠 내 몸을 제대로 이해하고 알뜰하게 살피며 받들어야 할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