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래서 애는 누가 돌본다고?
엄마는 항상 뭐든지 척척 잘하고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매일매일 변하는 몸의 상태가 맞는 건지 몰라서, 맘 카페와 유튜브에 검색해서 확인해본다.
내 입에 넣는 음식인데도, 내가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입덧 때문에 힘들 때는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배달 앱이나 인스타그램 음식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보며 속에서부터 당기는 음식을 무작정 찾기도 한다.
임신 주수 별로 챙겨 먹어야 할 영양제부터 태아 보험까지 매 순간이 질문과 검색의 연속이다.
사실 요즘 같은 시대 모른다는 건 변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휴대폰을 들어 검색만 하더라도 필요한 정보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나 지식을 알게 됐다고 해서, 언제나 명쾌한 답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위한 선택은 정답(正答)을 판단하기 어렵다.
정답(正答)은 '옳은 답'을 뜻한다.
내 아기에게 옳은 답은 뭘까? 아기의 인생에 행복과 건강이 가득하고 최상의 긍정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아기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 그 정답을 내가 잘 만들어갈 수 있을까?
어쩌면 그 답은 내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성별도 모르는 아기가 뭘 원하고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옳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만 봐도 부모가 아이를 위한 행동과 아이가 원하는 건 다를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태교를 고민하지 않을 수도, 미래에 대한 계획을 준비하지 않을 수도 없다.
나는 여전히 그 답을 모르겠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어땠는지.
"나도 몰랐지. 그냥 그때그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키운 거야."
우문현답이었다.
아기에 대해 고민하며 할 수 있는 준비 하되, 오늘의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하는 것.
어쩌면 이 브런치를 고민하고 쓰는 이유도 위와 같은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독하다 표현했던 내리사랑을 결국 나도 받고 있던 것이다.
태어나서부터 자라고 다 커서 이직을 하고 결혼을 하기까지 엄마는 언제나 나름의 답을 줬다.
작은 호기심 어린 질문부터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모르는 걸 질문했다.
완벽한 답이 아닐 때도 있지만, 언제나 엄마는 내게 해답(解答) 찾는 걸 도와줬다.
그리고 임신을 하고 엄마가 된 지금에도, 엄마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
사실 나의 임신 첫 순간부터 나는 엄마가 필요했다.
지난 브런치에도 쓴 것처럼, 평소의 나는 식욕도 없고 딱히 먹고 싶다는 음식도 없는 사람이다.
허기짐만 채워진다면 맵지 않은 선에서 아무 음식을 먹어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배우자가 회사에서 점심으로 미역국을 먹었다는 메신저를 읽고 갑자기 미역국이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 특히나 내가 사랑하는 미역국은 엄마가 해주는 미역국이었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엄마 미역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날은 유독 울적한 하루이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임신 준비를 하면서 코로나 2차 백신 일정을 마주했다.
우리 회사는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맞은 날과 다음 날까지 백신 휴가를 주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백신 주사를 맞으러 가기 전에 임신테스트기를 해봤고 '단호박 1줄(비임신)'이 나왔다.
'이번 달도 임신은 아니구나'하는 시무룩한 마음으로 백신 주사를 맞은 후 미역국을 먹고 싶었던 날이었다!
그래서 휴가를 빌려 친정으로 갔고, 엄마는 내가 집에서 가져가서 먹을 미역국도 한솥을 끓여놨다.(감동ㅠㅠ)
마침 그날 엄마네 집을 찾아온 할머니는 미역국이 먹고 싶다고 찾아온 나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갑자기 친정에 먹고 싶은 게 있어서 오면 임신이라던데. 좋은 소식 있냐?"
"아뇨. 그런 줄 알았는데 아녔어요."
그리고 3일 뒤에 임신테스트기를 했을 때 2줄이 나왔다.! 역시 어른들에겐 삶의 경험에서 얻는 통찰력이 있는 건가 싶었다.
이렇게 임신을 알게 된 시작부터 나는 엄마가 필요했고, 출산 이후를 준비하면서도 나는 엄마가 필요했다.
먼저 출산을 경험한 회사 선배는 아기를 낳고 나면 산모의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한 달 정도는 아기를 보는 걸 조심해야 된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래서 선배는 친정엄마가 2~3개월까지 애를 대신 봐줬고 그 덕에 지금도 몸이 아픈 곳이 없다고 했다. 그뿐일까..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을 한다면, 어린이집을 맡길 건지. 만약 어린이집을 맡긴다면 퇴근하고 돌아오기까지 아이를 봐줄 사람도 구해야 했다.
남의 손 타는 건 싫으니 당연히 양가 어머님께 여쭤봐야 했고, 또다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
엄마는 출산 휴가 중 아기를 돌보는 건 선뜻 당연히 해주겠노라 했지만, 육아휴직 이후는 주저하셨다.
황혼 육아를 생각해보지 못했던 엄마의 당황스러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고민에 빠졌다. 육아휴직 이후 맞벌이의 삶을 살지, 외벌이의 삶을 살지.
복직하고 돈을 벌자니, 아이와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죄책감과 걱정도 들고 양가 부모님께도 도움을 요청하는 게 눈치 보인다. 퇴사를 한다면 외벌이로 생활이 빠듯하더라도, 직접 아이를 전부 케어할 수 있으니 소중한 시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보육을 하게 되면 어린이집을 가는 것보다 아이가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란 생각까지 들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아이의 행복은 아이가 결정하는 것인데, 우리가 미루어 짐작하는 선택이 옳은지도 의문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정답을 찾고 있었지만, 정답은 언제나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결국 문제의 답은 다시 회귀했다.
아기에 대해 고민하며 할 수 있는 준비 하되, 오늘의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하는 것.
나는 평생 계획하고 대비하며 살아왔다. 내 나름의 준비된 안전망을 꾸리는 것에 행복과 평화를 느끼지만 아이를 기르는 건 다른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행복은 계획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부딪혀보며 가족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뿐.
그래서 답이 없는 문제에 해답지를 찾겠다고 사서 걱정하기보다는 긍정하고자 노력하려고 한다. 엄마와 아이 그리고 가정이 평안하다면 결과도 좋을 것이라 긍정하며, 차근차근 오늘의 행복을 쌓아가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엄마의 마음은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아이 대한 걱정과 불안이 끊이지 않지만, 켜켜이 쌓은 행복을 단단하게 다져서 굳건한 엄마의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 나도 엄마처럼 아이가 필요할 때 답을 주는 엄마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