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2주의 기적'에 대하여
광고에서도 종종 본 적 있는 말이 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배달?!" "뭐든 잘 소화하는?!"
위처럼 뭐든 먹어서 치료하고 먹어서 보신하고. 우리는 잘 먹어야 잘 사는 줄 아는 민족이다.
하지만 임산부에겐 제대로 소화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소화'는
1. 섭취한 음식물을 분해하여 영양분을 흡수하기 쉬운 형태로 변화시키는 일. 또는 그런 작용
2. 주어진 일을 해결하거나 처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을 뜻한다. <네이버 국어사전 기준>
결국 음식을 잘 씹고 삼키는 건 몸이 하는 물리적인 행위이고, 주어진 일을 잘 해결하는 건 개인의 역량과 능력이라 볼 수 있는데..
임신 초기/중기/말기 처음 겪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감당하고 이겨내는 능력은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특히나 임신이 처음인 나와 같은 초산맘은 의연한 대처가 더욱 쉽지 않다. 또한, 임산부에겐 입덧을 이겨내고 잘 먹고 삼키고 더부룩함 없이 소화하는 일이 쉽지 않다.
나 역시도 0주~11주까진 매 순간 불안과 피로감에 휩싸여 걱정만 늘었다.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를 소화할 여유가 없었다.
아무래도 임신 초기에는 유산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불안했고, 컨디션도 들쑥날쑥했으며 악몽을 꾸는 건 대부분 하혈을 하는 꿈이었다. 실제로 새벽에 악몽에서 깨면 화장실로 가 꿈이 현실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기도 했다. 고3 시절에도 잠이 중요했던 나였기에, 숙면하지 못하고 피로한 일상도 너무 괴로웠다.
낮잠을 수시로 잤으며, 쏟아지는 잠에 괴로웠다가도 낮에 잔 잠 때문에 새벽에 뒤척이기 일쑤였다.
임신 초기 동안 최대한 안정을 갖고자, 퇴근 후 눕눕을(눕기) 하다 보니 하면서 무기력함도 늘었다.
"정말 괜찮을까?"
막연한 질문엔 정확한 답이 없고, 두려운 마음은 시간이 들어야 해결되는 일이었다.
앞서 쓴 글에도 표가 날 정도로 걱정에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평소의 자잘한 걱정들은 인터넷/유튜브/맘 카페 검색을 했고, 의사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은 것들은 메모해두었다가 병원에서 가서 확인해야만 맘이 놓였다.
음식물을 소화하는 행위도 쉽지 않았다.
6주부터 치킨이나 곱창집을 지날 때마다 기름진 냄새를 맡으면 울렁이기 시작했다. 산책할 땐 일부러 피해서 정도였다. 11주까지 입덧은 심했다 좋아지길 반복했고 심할 땐 울렁거리다 결국 토를 했다. 물론 토를 하기 직전에 헛구역질만 하며 괴롭게 변기 앞에 서 있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많이 먹지 못했고 원래도 짧은 입이 더 짧아졌다. 삼시세끼 외 틈틈이 식사를 했고 속은 언제나 더부룩했다. 입덧을 피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다 보니 속에는 맞지 않는 매운 음식만 먹고 싶기도 했다.
평소라면 찾아 먹지도 않을 매운 음식들..! 결국엔 먹고 배탈이 났다.ㅠ
소화제도 먹기 어렵기 때문에, 소중한 매실액에 의지하여 소화가 잘 되길 기도만 한 적도 있었다.
어떤 임산부가 입덧에 관해 그런 말을 한 적 있다.
"최근에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를 보는데, 토하는 게 꼭 나 같다.."
웃픈 말이었고, 입덧이 극심하지 않았던 나 역시도 공감 가는 말이었다.
그리고 기적의 12주가 되었다.!
임신 초기에서 중기를 향하는 이 기간에는 입덧이 서서히 완화되고 컨디션도 점차 회복되었다.
병원에서도 12주가 지나면 유산의 위험도 줄어든다는 얘기도 듣자 막연한 불안감도 많이 해소되었다.
가끔씩 느끼는 아랫배의 자잘한 통증에도 예전만큼 예민하게 신경 쓰고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내 몸이지만 내 몸 같지 않은 내 몸'을 겨우 소화할 수 있는 정신력과 위장기능을 단련한 기분이었다.
13주가 되면서는 드디어 '여유'를 즐기는 마음을 갖게 됐다.
항상 '내일의 일'을 계획하는 게 중요한 미래지향적인 INTJ의 삶으로 돌아온 것이다.!
입덧과 컨디션 저하로 괴로울 때는 그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티며 시간을 보낼지만 무기력하게 고민했다. 몸의 안정을 위해 누워있다 보면, 뭔가를 능동적으로 하기보단 수동적으로 TV나 휴대폰을 보다 잠들게 된다.
하지만 나름의 소화능력을 기르게 된 이후, 원래의 성격대로 매일 계획을 짜고 하나씩 행동하게 되었다.
브런치만 보더라도, 입덧이 심하기 전까진 꾸준히 글을 썼으나 심해지고 난 후로부터 컨디션을 회복하기까지 글을 쓸 수 없었다.ㅠ
만약 임신이 처음인 데다 나처럼 걱정이 많은 편이라면, 차라리 미리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확인하고 내 몸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다음 글에선 내 몸의 변화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 속 여러 변화들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잘 소화하는 과정을 좀 더 다채롭게 쓰면서 나와 같은 엄마(혹은 예비 엄마)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보통의 에세이는 자신의 일상을 심도 깊게 다루고 그 세세한 감정들을 잘게 쪼개어 섬세하게 다루기 때문에 간혹 비장해지거나 진지해지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막연한 불안감에 비장해지기도 했지만, 앞으로의 글에서는 나름의 소화능력을 갖고 필요한 정보와 공감되는 글을 쓰고자 한다.
우리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