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11-13주 차] 엄마가 되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회사 선배에게 처음 임밍아웃을 했을 때 들은 말이 있었다.
‘아기를 낳으면 세상이 완전히 바뀔 거다.’라는 말.
그때는 몰랐으나 이제는 안다. 하루하루 몸소 체험하고 있기에.
겉으로 볼 때 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내 세상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첫째, 내 몸
겉으로 볼 때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체육대회 계주 4번 주자로 달리기도 잘했고, 수영이나 농구, 골프 실습도 항상 A+로 잘하던 사람이었다. 한 번에 여러 일을 하는 편인 데다 성격도 급하니 내 운동신경은 아주 바쁘게 쓰였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멍 때리며 쉬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었다.
아주 부지런하며 꽤나 민첩하고 가볍게 움직일 줄 아는 사람.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기가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생활하는 아기의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밥 먹고 잠자고 울고 웃어줄 때의 모든 것이.
특히나 낮잠을 잘 때는 세상 아름다운 천사가 따로 없었다. 그 평화로운 잠을 곤히 자도록 지켜주고 싶었다. 그때 한적한 오후의 가을 바람이 열린 창문으로 조금 세게 불었다.
열려있던 안방 문이 바람을 타고 세게 닫히려는 듯 움직였고, 나는 눈앞에서 자는 아기와 문을 동시에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할 겨를 없이 몸이 반사적으로 튀었다.
왕년의 운동신경을 자신하며 벌떡 일어났다. 성큼 다가가 문이 세게 닫히지 않게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는 자만이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나면서 균형을 잃었고 그대로 앞에 고꾸라지듯이 문에 부딪혔다.
당연히 부드럽고 빠르게 움직일 줄 알았던 두 다리는 굼뜨고 느렸고 쉬이 무게중심을 잃었다.
안방 문은 진작에 닫혔다. 그것도 세게 쾅. 당연히도 내가 문에 다다르기 직전에 말이다.
나는 쾅 닫힌 문에 다이빙하듯 왼쪽 어깨를 부딪혔고 뒤로 튕겨나가며 우당탕탕 굴렀다.ㅋㅋ..ㅠㅠ
곤히 자고 있던 아기는 큰 소리에 깜짝 놀라 울었다.
나는 내 몸 아픈 것보다도 아기 우는 것이 걱정되어 그대로 아기에게 달려가 아기를 안아주었다.
그제야 모성애를 느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인 순간이었다.
아기를 안고 있던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다행히 그때 온몸에 든 멍은 사라졌지만, 그날 이후로 아직까지 교통사고 후유증처럼 왼쪽 어깨가 아프다.
둘째, 대화의 주제
이제 내 또래의 낯선 이를 만날 때 가장 먼저 궁금한 건 상대방이 아기가 있는지 있다면 몇 살인 지다.
대화의 틈에 기회가 된다면 내 아기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고 싶은 건 덤이고. :)
길에서 유모차만 봐도 반갑고 상대방 아기는 얼마나 컸는지 궁금하다.
길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것만 봐도 내 아기는 언제 저리 클까 궁금하다.
심지어 환승 연애 같은 연애 프로그램을 봐도, 남자 출연자를 보고 설레기보다는 이런 생각을 먼저 한다.
'우리 아기도 저렇게 잘생긴 남자 어른으로 컸으면 좋겠다.'라고...
사진첩은 온통 아기 사진으로 가득하고, 내 개인정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기본 이미지였던 카톡 프로필은 예쁜 아기 사진으로 바뀌었다.
셋째, 내 어휘력
어릴 때의 난 유치원 차에 타기만 하면 차 안의 아이들이 내 주위로 모여 앉았다. 차에 타고 내릴 때까지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웃어주면 기분이 좋아 더욱 재밌게 얘기하려고 했다.
함께 탄 선생님은 내 수다 때문에 귀가 얼얼하다며 겨울에는 목도리를 입까지 올려 가려주곤 했고, 졸업할 때는 특별히 이야기상을 주기도 했다. 커서도 발표를 곧잘 했고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수업에 A+을 받는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출산과 함께, 정확히는 출산을 통해 호르몬과 신체의 변화를 겪으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무뎌지는 운동신경과 단어를 한참 고르는 내 입은 마치 모래사장 위 적은 글귀들이 파도에 의해 사라지듯이.
나는 아픈 어깨와 허리의 고통을 파스로 참으며 매일 아기와 옹알이로 대답한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간혹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지 않는다면,
내 하루의 대화는 혼잣말로 시작해서 혼잣말로 끝났다.
하루의 대부분이 0세와의 대화이다 보니 어휘력 감소는 기본이오, 기억력 감퇴로 건망증과 바보가 된 기분은 덤으로 얻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나는 이제 옛날 같지 않구나.’
괜찮을 거라 자부했으나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 내 몸 다치는 것보다 소중한 존재가 생겼다는 것에.
이제 나는 안다. 엄마가 되기 전과 후, 똑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10달 동안 한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한 건 분명 행복하고 기쁜 일인데, 잉태 후 남겨진 내 몸은 늘어진 빈 껍데기처럼 탄력을 잃고 거슬리는 흔적들을 품은 몸이 되었다.
늘어난 뱃살과 가슴, 짙게 남은 임신선, 평생 처음 본 체중, 맞지 않는 바지와 옷, 빠지는 머리카락
호르몬의 영향으로 착색된 겨드랑이, 목주름 등
늘어난 복직근은 내게 말하는 듯하다. SNS나 TV 속에 보이는 내 또래의 마르고 예쁜 여성이 될 순 없다고.
만약 원한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
하지만 갓 백일이 넘은 아기를 홀로 보면서 식단과 운동을 하며 피부관리를 병행하긴 쉽지 않다.
가끔은 거울 속 변한 내 모습을 보는데 참 슬펐다. 남편은 직접적인 변화 없이 출퇴근을 하는데 나만 괴로운 기분이다. 아기를 안고 해지는 창밖을 보며 울적였고 늦은 밤 잠든 아기를 안고 조용히 울기도 했다.
비로소 산후 우울감을 몸소 체험한다는 걸 알았다. ‘아기는 멋모르고 낳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임신과 출산까지. 이 모든 걸 다 알고서도 아기를 낳을 수 있었을까.
심지어 이제 시작인 육아까지 겪으면서 말이다.
머리로는 어쩔 수 없는 변화를 받아들이자는 생각이 들지만, 마음은 편히 소화할 수 없었다.
회복 탄력성이 필요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긍정의 힘이.
나름의 방식대로 회복할 수 없다면, 우울감과 부정에 잠식당할 것만 같았다.
소중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기가 눈앞에 있고, 현실은 감사해야 할 것들로 가득함에도
나 혼자 우울하고 두려워 걱정하며 쌓은 장벽을 무너뜨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장벽에 스스로 둘러싸여 갇혀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비록 치즈 냄새와도 같은 특유의 아기 토 냄새가 향수처럼 베인 옷을 입으며 매일 똑같은 하루를 3 시간 텀으로 아기와 보낼지언정, 언제나 그랬듯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옛날 같지 않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리고 가족만큼 소중한 나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나는 3가지 일을 했다.
생산성 높이는 루틴, 10년 일기, 행복 기록함
-내 회복탄력성을 위한 노력은 다음 회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