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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Mar 02. 2020

육아는 겨울날 안에 껴 입은 폴라티 같은 것

많이들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잘 때가 가장 예쁘다고.

그 말은 정말이다.


저리도 사랑스럽다니.

볼을 세게 꼬집고 싶다.

뽀뽀를 100번 정도 해주고 싶다.

통통한 저 팔을 한 번 꽉 깨물고 싶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존재가 있었다니.


그들이 잘 때, 육아는 어느덧 핑크빛 솜사탕이 된다.

그렇다. 말도 안 되는 허구이지.

아니다. 그래.

지지한 손으로 자꾸 만지고

끈적해진 손으로 또 만져서

채도를 잃어버린 회분홍색 그 정도의 솜사탕쯤이라면 괜찮을 듯도 싶다.



4년 간이라는

길다면 길 육아전담의 시간이 끝이 났다.

워킹맘 선배님들의 한결같던 조언 따라 막바지 육아전담은 

남편의 휴가도 받아 훨훨 날아다녀보겠다 했었다.

결혼 후 이제는 맘먹고 가는 원정이 되어버린 서울도 실컷 가보고, 

못 본 친구들도 몰아서 보겠다며 약속도 여럿 잡아두고는 

자유부인 포부에 신이 났더랬다.

그리고..

코로나가 왔다.



나의 육아전담 막바지는

자유부인은 커녕

오후 3시까지는 보장되던 자유시간 마저 앗아간 

풀타임 연년생 육아로 그렇게 속절없이 지나갔다.


그렇게 난 풀타임에서 바로 맞벌이 워킹맘이 되어버렸다.


4년의 공백을 뚫고 적응도 바쁜데

우리 아이들은 갈 곳이 없었다.

긴급 보육이 가능하다지만,

사실 가능만 하다면 안 보낼 수 있다면 안 보내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었으니까..


지난주까진 그래도 이래저래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이번 주는 정말 큰일이었더랬다.


그런데 커다란 선물처럼  

엄마와 여동생이 어젯밤 2시간을 달려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너무 긴 시간 동안 엄마 아빠 이외의 다른 인물을 본 적이 없던 내 친구들..

너무 긴 시간 동안 집에만 갇혀있던 나의 그 친구들은,

너무나도 씩씩하게 그 차에 올라탔고

커다란 짐 가방 하나 더 태워 가지고는 그들은 떠났다.

그렇게 커다란 선물처럼

난 오늘 퇴근 후 아무도 없는 빈 집에 앉아있다.


어젯밤 갑자기 보내게 된 친구들로

짐을 싸기 바빴고, 

손톱을 깎이고, 머리를 감기고, 저녁밥을 바쁘게 먹이고는,

정신을 차려보니 그들이 먹다간 밥그릇과 수저, 난장판이 된 그들의 방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평소 청승 게이지가 꽤 높은 나는 그렇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외투를 걸치고 마스크를 끼고는 좋다고 신나게 밤 산책을 나갔지만;)



정신없는 시국에 

연년생을 둔 맞벌이 부모의 입장에 처해지면서

처음으로, 

아이가 없었다면 이 시기도 이렇게 버겁진 않았을 텐데..

아이 없는 사람들이 부럽다.. 했었다.


하지만 그들을 보내 놓고 보니

그들이 없는 집

그들이 없는 밤

그들의 소리가 아닌 소리들

무엇보다 그들이 없는 나는 

담뿍하게 행복할 순 없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겨울이 오면 목이 춥다고 했었다.

엄마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요 한 두 번째 전 겨울 정도부터 조금만 추워져도 목이 시렸다.

목이 추우면 온 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얇은 목티를 대부분의 옷에 레이어드 해 입으며 겨울을 난다.

그렇다고 두터운 니트 폴라는 잘 입지 못한다.

목이 더우면 온 몸이 갇혀버리는 것 같으니까.


육아는 겨울날 안에 껴 입은 폴라티 같다.


없으면 허전하고

그 하나로 온몸을 포근하게 하니까..





그렇지만 

조금만 따뜻한 곳에 가도 

부대끼니까? 


좀 보고 싶단 뜻이야. 내 친구들아.

엄마가 모레 데리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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