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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Jan 10. 2021

너의 놀이는 나의 반성문

나는 연년생 엄마이다.

어느덧 그녀들은 6살, 5살이 되었다.

막막하던 아기의 터널을 지나 이제는 아무리 우겨봐도 아기는 아닌 것 같은,

그래서 그것이 너무 섭섭한 나이가 된 나의 친구들이다.



그들은 연년생이기도, 같은 성별이기도 해서인지 아주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요 며칠 원에 보내지 않고 꼬박 하루를 꽉꽉 채워 함께 지내보아도

이젠 예전만큼 힘들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아마 이들이 너무나 좋은 친구로 잘 놀아준 덕분이겠다.


그로 인해 멀지 않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가능해졌다.

가령,

나 혼자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맘껏 맞으며 긴 목욕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잠깐은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으며,

짧은 글 정도를 쓸 수 있을 때도 종종 있다.

오히려 가끔은 내가 이들의 놀이에 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고 도리어 역할에 몰입하지 못하는 초짜 배우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도 많다.

지금도 그녀들은 방문까지 닫고 들어가 선생님 놀이에 한껏 몰입해있다.


그들의 놀이를 듣다 보면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정해진 각본도 없이

소재와 역할 분배만으로 저들의 놀이는 30분이고 40분이고 이어진다.

애드리브로만 꽉꽉 채워진 대사처리와 소품 활용을 보면 참으로 아이들은 대단하단 생각이 절로 든다.

어른이라면 쑥스럽기도 당황스럽기도 할 상황을 매끄럽게 그저 또 이어가다니 말이다.

그들의 놀이는

‘내가 참 애들을 잘 키웠나 봐’하는 뿌듯함과 감사함으로 와 닿게 될 때도 있지만

사실 아주 많은 날들엔 나의 반성문이 된다.

대사처리에 사용되는 워딩, 어조 그리고 눈빛, 되받아치는 대사 뉘앙스에서 나를 본다.

어떨 땐 정말 나를 향해 던지는 돌려까기로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너희에게 어떻게 말하고 있었을까

나는 너희가 도움을 청할 때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나는 너희가 화가 날 때 어떻게 위로해주었을까

나는 너희가 실수를 했을 때 어떻게 대처했을까


하나의 놀이에 담긴 수많은 에피소드 속에는

엄마의 눈빛과 말투, 생각,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떨 땐 참 아프다.

아무도 모르니까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군림하고 있던 어른답지 못한 어른의 태도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저들은 다 알고 다 느끼고 다 생각하며 다 기억한다.

그저 이 부족한 엄마를 너무나 사랑하니까 그냥 넘어가고 이해해주고 있는 걸지도.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라 생각하지만

도리어 나는 그런 사랑을 받고 있었나 보다.


오늘도 문틈으로 들려오는 그들의 놀이에 가슴이 쿵쾅거린다.

과연 그 놀이에서 내가 홀가분할 날이 올까 하지만

어떤 날은 감탄으로 어떤 날은 감사함으로 어떤 날은 부끄러움으로 어떤 날은 뿌듯함으로 그렇게 내내 쿵쾅일 것이다.


오늘도 그냥 반성문 삼아 들어본다.

그들의 놀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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