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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Jan 24. 2021

관계의 측면

하루에도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있고 내려야 하는 엄마.


두 명의 분쟁조정 요구자들에게

어떤 의견을 채택하는 것이 더 정의에 수렴하는 것인지,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더 언니다움을 실현하는 것인지,

어떤 어조로 말하는 것이 화자로 하여금 더 설득력이 있을지,

무엇 때문에 이런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과거의 사건과는 또 어떠한 관계성에 놓여있으며

앞으로의 모습과는 또 어떤 상관관계를 보일지 등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까지 아우르는 방법이나 모범적 행동의 제시가 필요하다.

참 고되다.


그래서 어떨 땐 뭐

‘응 그래~ 사이좋게 놀아.’하는 방관의 태도를 택한다거나

‘또 싸웠어!!! 도대체 왜 그렇게 싸워! 둘이 좋은 친구 이제 안 하기로 한 거야?’하는 정죄와 더불어 옭아매기의 방법을 택하기도,

그들로 하여금 자율적 의사결정과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을 스스로 탐구하도록 하겠노라는 그렇듯한 핑계로 그저 내버려두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당면한 문제에 따라,

물론 엄마의 개입 여부나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이것을 결정하는 것 또한 엄마의 순발력과 통찰력을 겸비한 판단을 요하는 것이라는 게 문제다.


2번 친구가 어느덧 48개월에 가까워지면서,

그저 언니의 행동이 좋아 보이고

그저 언니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에 국한되었던

‘언니는 대단해.’라는 왜곡된 진리(?)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면서

둘의 격돌의 찰나는 점차 잦아졌다.

그로 인해 동생이 생기고 약 40개월가량의 시간을 선망의 대상으로 살아오던 1번도 아마 자신에게 반대의견을 제기하는 동생이 참 낯설기도 할 테다.



엄마와 딸,

언니와 동생,

여자 셋,

으른 하나와 어린이 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관계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접하게 된다.

그 새로움에 어떻게 하는 것이 유연한 것인지

사실은 나도 배우고 싶은데,

자꾸 저 둘은 나에게 알려달래고, 나에게 분쟁을 조정해달라 한다.

뭐 나라고 더 특별한가.

과연 내가 알려주는 방법이 과연 저들이 내린 결정보다 과연 더 민주적이라, 더 건설적이라, 더 미래지향적이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또 생각하게 된다. 아마 곧 또 달라질 것이라고.

내가 분쟁조정위원회의 유일한 결정자였던 이 자리를 곧 내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덧 이들은 나보다도 훨씬 유연하고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방안을 내어놓게 될지도.

“아, 엄마 그게 무슨 쌍팔년 발언이야! 우리 엄마 할머니 다 됐네.”하는 배은망덕한 촌철살인의 발언을 듣게 될 날이 곧. 올지도.


그러니 가끔은 진짜 지긋지긋하다고 여겨지는 이 직책(?)을 조금은 감사한 마음으로,

아주 조금만 군림하고

아주 조금은 너희들을 더 존중해주면서

아주 조금은 희생도 하면서

아주 조금은 짜증도 참아내면서

지금의 관계를 이어나가 보아야겠다.






하지만 너네 꼭 기억해.

엄마가 아주 조금이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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