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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May 14. 2021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남자


그를 좋아하게 된 건 아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중학교 1, 2학년쯤일 것 같다.

‘처음처럼’

‘내게 오는 길’

학교 근처 문구점에서 샀던 누런 종이에 B4용지 크기쯤 되었던 악보가 피아노 위에 올려져 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친구들이 부단히 성실히도 하늘색 풍선과 젝스키스로 바쁠 때

난 라디오에서 그 노래들이 나오길 늘 기다렸었다.

사람이 어떤 기준으로 혹은 어떤 계기로 노래에 대한 취향이 생기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다가 나는 내 친구들에게 그다지 인정받지 못할 노래 취향을 가지게 되었을까.

아무튼 그를 좋아하게 된지도 언 20년이 넘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를 좋아한다.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좋아한다.

물론 노래를 더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문명의 발달 탓일 수도 있겠지만.  

혼자서 음악을 듣게 되는 기회가 오면, 아니 사실 종종은 나의 꼬마 친구들과도 함께

일주일에 3일 이상은 그와 함께 하고 있다.

몇 년 전쯤 그가 한 유명 예능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온 적이 있었다.

거기서의 그는 내가 상상해왔던 모습의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말과 행동이 참 그의 노래와 닮았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어제 내가 즐겨 듣던 팟캐스트를 오랜만에 들었는데 그 사람과의 전화연결이 담겨있었다.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깊은 목소리로 담백하지만 위트 있게 질문에 답해가고 토크를 이어가던 그였다.

아 정말. 간만에 설렜다.


진짜로 만나보고 싶다 생각하다가도

아니야 그냥 내 상상 속에 허구 속에 기대 속에 두는 편이 좋지 한다.


휴직을 하면서 동료 선생님에게서 편지를 받았었다.

그 편지 속에서 나는 참 좋은 사람이더라.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의 기대처럼 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곱게 포장된 나의 날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복직 이후엔 함께 일하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우린 모두 누군가의 상상과 기대 속에 존재한다.

그가 보여준 눈빛과 말투, 어떤 주제에 대해 서술해가는 그의 방식을 통해 상상과 기대는 시작된다.

그 사람은 사실 내 상상보다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사실 내 기대보단 못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진짜의 온전한 그 사람이란 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가 가진 빛나는 부분을 빛난다고 느끼는 것은 오롯이 내가 가진 주관일 뿐이니까 말이다.

15살의 난 처음처럼을 부르던 그 사람을 빛난다고 생각했다.

15살의  많은 친구들은 하늘색 풍선으로 그 빛나는 것을 물들였었다.  


모두에게 빛날 수도 없고,

모든 부분이 빛날 수도 없다.


그냥 내가 그 사람에 대해 간직한 빛나는 부분에 박수를 보내고

내가 가졌다 생각되는 빛나는 부분을 더 빛나도록 가지고 있으면 그걸로 되었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이 가끔 아니라 할지라도 나를 설레게 해 준 빛나는 부분은 그냥 빛나게 두면 그걸로 되었다.


빛나 보이려고 애써왔고 애쓰고 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어서

예쁘게만 보이고 싶어서.

어른이 되면 그러지 않게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건 참 맘대로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조금씩 연습해야지.

조금씩 인정해야지.

이제 조금씩은 그래 보아야겠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노래는 안 부르고 참 열심히도 소시지만 만들던

어느덧 좋아한 지 20년이나 된 그도

난 여전히 좋아하고 빛난다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얼른노래해요

#많이많이노래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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