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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May 21. 2021

물웅덩이


여기 조심해서 지나가.
거기를 그렇게 세게 지나가면 어떡해!
아으, 진짜 양말 다 젖었잖아. 어떻게 할 거야, 이거.



늘 조심하라고

결국엔 잔소리를 하던 장소.

살금살금 조심조심 지나가야만 했던 곳.


어린이와 어른이 극명하게 다른 방법으로 지나가는 곳.




얼마 전 장화를 샀다.

사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내내.

그렇지만 장화를 신으면 얼마나 신겠나 하는 본전 생각도 들었고

장화를 신은 으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그치만 그냥 샀다.

그리고 어제 장화를 처음으로 신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세상에 이건, 요술 장화였다.

물웅덩이를 조심조심 걷던, 물웅덩이를 지나는 나의 꼬마 친구들에게 잔소리를 하던, 어제의 나와 나는 달라진 게 없었는데

그저 장화를 신었을 뿐인데

나의 발은 자꾸만 물웅덩이를 찾아가게 되는 게 아닌가.

처음 물웅덩이를 지날 땐 아주 소심하게 찰방찰방

그다음 번에 만난 물웅덩이에서는 아까보단 좀 더 용기가 생겨 첨벙첨벙

너무 신이 났더랬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났더랬다.

마스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날 보았다면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섬뜩했을지도.

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그저 나의 장화가 발을 이끌었을 뿐인 걸.

내 안엔 나도 몰랐지만 머디 퍼들을 좋아하는 페파피그가 있었던 거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을 거다.

나의 꼬마 친구들이 그런 것처럼 아마 나도 그랬겠지.

언제부터 물웅덩이를 피해 다니게 되었을까

어떤 마음이 물웅덩이를 찾아가게도, 조심하게도 하는 걸까


그동안 이렇게 재미있는 걸 방해했다는 미안한 마음에,

하원길엔 장화와 우산을 바리바리 싸들고 그들을 맞으러 갔다.

차 옆에서 장화로 갈아 신는 그들의 표정엔 이미 아까 혼자 찰방이던 나의 표정이 들어와 있더라.

셋이서 신나게 물웅덩이를 첨벙거리는데 혼자 첨벙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신이 났다.

그게 그저 누군가와 신나는 걸 공유한다는 마음 때문이었는지

셋이서 만들어낸 한층 더 커진 물소리 때문인지

나를 괜스레 뭉클하게 하던 내 친구들의 맑은 웃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육아가 내 맘 같지 않은 것은, 육아가 때론 너무나 고단하고 울컥 화가 나는 것은 어쩌면

물웅덩이에 대한 마음의 간극과 같은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린 같은 마음이었지만,

그저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 밥을 먹는 것과 같이 실은 너무나도 별 것 아닌 과정을 반복하며 훌쩍 흘러버린 시간에서

마음이 달라졌고, 이해하기 어려워졌고, 아니 도리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은 태도로 마주하는 것.

사실은 싫어진 게 아니라

그 뒤에 일어날 일을 미리 생각하게 되었을 뿐이고,

당장의 재미가 귀찮음과 피곤함에 패배했을 뿐인

물웅덩이를 참으로 좋아했지만 아니라고 외면하고 있는 안 진실한 슬픈 으른이 돼버린 것 일지도.


요 며칠 담요와 커튼으로 텐트 만들기에 빠진 그들에게

귀찮은 기색으로 비협조적이었던 내 모습을 생각해 본다.

6살의 김해나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텐트 만들기에 신이 났겠지. 정말이지 그랬을 거다.

오늘은 협조적인 태도를 취해주어야지.

이 마음이 얼마나 갈지 모르니까.

내일은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이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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