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목록: MP3파일
동네 친구들은 빡센 힙합을 좋아한다. 나도 힙합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감성적인 노래들이 더 내 취향에 가깝다. 그렇다. 나는 내 친구들과 음악 취향이 달랐고 그게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평소 친구들과 나는 좋은 노래나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하면 단톡방에 공유하곤 했다. 공교롭게도 친구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 노래 취향이 다르다 보니 내가 추천한 곡들은 친구들에게 질타를 받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좋은 노래들을 어떻게 별로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래. 취향의 다름은 존중하지 만 조롱은 참을 수 없었다. 음악 취향을 주제로 친구들과 몇 번 얘기할 때마다 친구들은 내 취향을 존중해 주지 않았다. 나도 고집이 센 편이라 지지 않고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다. 하지만 분하게도 항상 쪽수가 밀려 말싸움에서 지곤 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우연히 좋은 노래를 발견하면 마치 진주를 발견한 것처럼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 주는 것을 즐긴다. 다른 사람이 내가 추천한 노래에 완전히 빠져버리거나 가끔 오디오로 틀어 놓은 노래 제목이 뭐냐고 물어보면 기분이 너무 좋다. 행복은 나눠야 하는 법. 평소에 나는 노래를 추천해 주고 싶을 때 메신저로 공유하거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노래를 업로드하곤 하는데 어느 날은 좋아하는 유튜버의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듣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음악을 추천해 주는 유튜브 채널을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내가 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고 고민 없이 플레이리스트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사실 좋은 노래를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마음보단 친구들이 내 플레이리스트를 우연히 알게 되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채널을 개설하고 유튜브 채널명을 고민했는데 가게로 치면 간판 이름, 사람으로 치면 평생 가져갈 이름인데 기왕이면 의미 있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멋있게 지어주려고 고민하다 보니 점점 산으로 가는 것 같아서 채널의 정체성이나 컨셉 등 거창하게 기획하기보단 이 채널이 탄생한 이유가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친구들이 나의 음악적인 취향을 무시하는 점을 착안하여 ‘못생긴취향’이라고 지었다.
본격적으로 유튜브 채널 기획을 시작할 땐 굉장히 재밌고 설레었다. ‘내가 좋아하는 띵곡들을 사람들한테 알려준다니!’ 마음 한편엔 ‘영상을 올리자마자 유명해지면 어떡하지?’라며 김칫국 한 사발을 들이켜며 들뜨기도 했다. 인터넷을 켰고 검색창에 키보드를 두들겼다.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만들기’를 검색했다. 나처럼 플레이리스트 유튜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싶었다. ‘플레이리스트 만드는 법’에 관한 자세한 정보들이 인터넷에 빼곡하게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나 고소당하면 무서우니까 음원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체크했다.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 편집하는 방법을 배우고 음원사이트에서 정식 음원인 MP3 파일을 구매하여 영상 편집을 시작했다. 처음이라 영상 편집 기능도 제대로 몰라서 한참을 헤맸지만 다행히 플레이리스트는 기본적인 편집 기능만 요구되는 간단한 영상 작업이라 생각보다 빠르게 완성할 수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완성된 영상을 바로 업로드했는데 이럴 수가.. 저작권 문제에 걸려 업로드한 영상이 차단당해버렸다.
저작권에 걸리는 노래들은 제외하고 다시 영상을 재작업해서 업로드 해봤는데 또 다른 노래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저작권에 걸리는 음원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곡을 다운받을 때마다 돈을 냈기 때문에 매번 결제 후에 저작권 문제를 확인하는 것도 비용적인 한계가 있었다. 정식 음원을 구매하기 전에 유튜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음원인지 미리 파악하는 과정이 꼭 필요해 보였는데 당최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큰 벽에 부딪혀 1차로 브레이크가 딱 걸려버리니 의욕이 급격하게 떨어져 버렸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저작권이 문제면 별다른 해결 방법이 없을 것 같았고 멘탈적으로 좀 지치기도 해서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며칠이 지났다. 그만두고 싶었는데 ‘어떻게 하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지만 저작권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은 찾을 수 없었다. 근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음악 저작권 문제가 이렇게 심한데 유튜브에서 플레이리스트를 운영하고 문제없이 영상을 올리는 저 수많은 유튜버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분명 해결 방법은 존재했다. 단지 내가 모르는 것일 뿐. 해결해 보려고 혼자 끙끙 앓다가 끝내 방법을 찾지 못했고 결국 직접 유튜버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플레이리스트 유튜버를 찾아 50명 가까이 리스트업하고 인스타그램 DM과 이메일을 그들에게 각각 보냈다. 그들 입장에서 나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이라 내가 필요한 것만 물어보면 거들떠도 안 볼 것 같아서 약간의 아부를 보탰다. “저는 유튜버님의 오랜 팬이고요.. 유튜버님의 플레이리스트 영상을 보며 유튜버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대충 이런 식의 가슴 절절한 사연이었다. 아부성 편지와 함께 저작권 문제에 대해 슬쩍 여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튜버 50명에게 연락을 보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중 40명은 아예 연락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남은 사람들 중 몇몇은 답장해 준 사람도 있었는데 대부분 자기도 잘 모르는 문제라며 대답을 거절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영업 비밀이라 안 가르쳐 주나보다’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려던 찰나에 어떤 한 분에게 답장이 왔다.
이분이 영상을 작업할 때 저작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다는 명확한 해결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노하우를 디테일하게 설명해 주신 것이다. 게다가 내 꿈을 응원하겠다는 따뜻한 말씀도 덧붙여 주셨다. 예상하지 못했던 탓일까 장문으로 정성스럽게 답변해 주셔서 더 감동을 받았다. 그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그분의 조언을 참고해서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작업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희망이 보였다. 마침내 영상을 완성하고 업로드를 시도했다. 저작권 문제가 다시 도질까 걱정됐는데 다행히 저작권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드디어 유튜브 첫 영상이 게시되었고 내 나름대로 역사적인 순간이라 혼자만의 감격에 젖어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기대와는 다르게 성과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조회수 없음’만 지속될 뿐이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구나. 실망했지만 그래도 문제없이 제작하는 법을 배웠으니 부단히 업로드 해 보기로 다짐했다. ‘끈기 있게 하다 보면 구독자 10명쯤은 생기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지금 초라한 결과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친구들한테도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벼운 취미로 생각하고 꾸준히만 해서 영상 100개를 업로드하는 목표를 세웠다. 만약 영상 100개 업로드를 달성하고 나면 유튜브를 계속할지 그만둘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소박한 꿈이 있다면 내가 유튜브를 그만두기 전에 친구들이 먼저 내 채널을 단톡방에 소개해 줬으면 좋겠다. 그 순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오늘도 영상을 만들고 있다. 내 음악 취향은 앞으로 더 못생겨질 거다.
P.S) 못생긴취향을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영상은 목표했던 100개 업로드를 훌쩍 넘겼고 구독자는 1,000명을 넘어섰다. 업로드한 영상의 총 조회수는 30만을 돌파했다. 슬프게도 친구들은 아직 ‘못생긴취향’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난 MP3 파일을 구매해서 열심히 영상 작업을 하고 있다. ‘못생긴취향’의 해피엔딩은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