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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 위에 툭 사진들이 포개진다.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들이 제법 쌓여 방바닥에 앉아 한 장씩 들춰봤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점심 식사 후 가게 맞은편 사진관에서 즉흥적으로 찍은 사진, 푹푹 찌는 한여름에 속초 흑백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시원한 대관령 양떼목장에서 찍은 인생네컷까지 다양했다. 누가 보면 사진 찍는 걸 되게 좋아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난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이 별로 없었다. 그 이유는 사진을 찍으면 어색하게 나오는 내 모습이 싫었기 때문인데 카메라 공포증은 아니고 카메라 질색증 정도 되겠다. 사진 찍기에 질색인 내가 친구들에게 사진 찍자고 졸라댄 건 불과 며칠 전 일이었다. 친구들은 제법 진지하게 만난 여자친구들이 있었고 모두 오래된 연인이었다. 서른이 넘어 어느덧 결혼할 나이가 되자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여자친구들과 결혼을 주제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같은 주제라도 20대와 30대에 하는 결혼 이야기는 차원이 다른 무게감이었다. 덕분에 대화 주제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철없는 농담 따먹기 식 시답잖은 대화에서 결혼 시기는 언젠지, 집은 어떻게 마련할 것 인지, 재테크는 어떻게 할 것인 지 제법 어른스러운 대화 비중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런 대화 주제는 친구들에게 더 와닿는 이야기였을 뿐, 여자친구도 없는 지금 시점의 나에겐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결혼할 준비가 전 혀 되어있지 않았다. 아무리 대출이 있다고는 하지만 직장인 월급으로 몇 천만 원하는 결혼식 비용과 수억 대의 집값을 생각하면 숨이 턱 막혔다. 더군다나 내 하루를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현재가 너무 행복했다. 불투명하기만 했던 결혼을 친구들이 하나 둘 고민하고 선명하게 준비해 나가는 모습이 나도 더 이상 회피할 수는 없다는 압박감이 들어 불안했다. 사실 친구들이 결혼하게 되면 지금처럼 만나기가 더 어려워질 거란 생각에 섭섭한 감정이 더 컸다. 물론 나도 언젠가 결혼을 하겠지만 친구들이 먼저 결혼하고 나면 나는 혼자 외톨이처럼 남아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로움이 싫었고 친구들과 즐겁게 만나 노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마치 우리 들 청춘의 끝을 보는듯한 느낌이랄까? 그때부터였다. 우리의 청춘을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우리가 아직 청춘일 때, 유부남이 되기 전에,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주말에 만날 때마다 틈만 나면 친구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졸라댔다.
인생네컷, 사진관 촬영, 스마트폰 사진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친구들이 처음부터 달가워하진 않았다. 사진 찍기 싫어하는 친구, 그냥 귀찮아하는 친구, 무슨 사진이냐며 구박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우린 주로 간편하게 찍을 수 있는 인생네컷을 찍었다. 비록 함께 찍은 사진을 가져가기 귀찮다는 이유로 나한테 주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래도 친구들은 못 이기는 척 내 말을 다 들어줬다. 꾸준히 찍다 보니 사진이 점점 쌓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메신저 단톡방에 우리들이 함께 찍은 사진들을 공유했다. 친구들도 사진을 보면서 추억에 젖었다. 원래도 친했지만 눈에 보이는 추억들이 우리들의 우정을 더 끈끈하게 해주었다. 이제는 친구들도 사진 찍는 것에 익숙해진 듯했다. 친구들이 먼저 사진을 찍자고 한다. 어느덧 우정 사진 촬영은 우리들에게 당연한 코스가 되었다. 수북하게 쌓인 사진들의 정리가 필요해서 포토 앨범을 샀다. 포토앨범 속에 사진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늙어서도 앵글에 함께 갇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