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목록: 일회용카메라, 필름 사진 인화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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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눈을 떴다. 낯선 사람들이 나를 응시한다. 눈을 맞추자 흐릿한 얼굴들이 점차 선명해진다. 사람들 뒤로 푸른 나무들의 잎이 무성하다. 여긴 어디지? 숲인가? 그러기엔 테이블 위엔 커피 5잔과 잔디 밭 위엔 의자가 놓여있다. 찰칵! 카메라 셔터 숫자는 26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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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나를 저렴한 값에 고용했다. 나는 일회용품 출신이지만 열심히 일했다. TV에선 신문지도, 고철도, 유리병도, 페트병도 모두 각자의 역할과 쓸모가 있으며 일회용품 역시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내 역할만 잘 해낸다면 나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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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컷 남았어?” “딱 10컷 남았다.” “얼마 안 남았네” “필름 다 쓰면 카메라 다시 쓸 수 있나?” “이건 일회용품이라 못 쓰지. 쓰던 건 버리고 새걸로 바꿔야지” “그냥 정기적으로 쓸 좋은 카메라를 사는 건 어때?” “에이.. 비싸잖아. 어차피 일회용은 싼 맛에 쓰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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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컷만을 남겨두자 나는 그동안 잘 해냈을까, 그들을 만족시켰을까, 하고 싶은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불안했다. 나는 그들의 마지막 사진을 촬영했다. 내 눈에 비친 그들의 밝은 표정은 나와는 다른 세계 같았다. 내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졌다. 전원이 꺼져가는 걸까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 후
“안녕하세요. 사진 인화하려고요.”
“네. 필름 주세요.”
남자는 일회용 카메라를 건넸다.
“일회용 카메라인가요?”
“네 맞아요.”
“사장님 혹시 필름 새걸로 바꾸면 이 카메라 더 쓸 수 있나요?”
“아니요. 일회용 카메라는 더 못 써요. 한 번 쓰면 폐기해야 됩니다.”
“아 그렇구나. 아깝지만 어쩔 수 없죠 뭐.”
본능적으로 오늘이 마지막임을 알아챘다. 무기력한 체념 속에서 다음 생은 하루살이가 아니기를 희망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