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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호 Oct 25. 2024

병아리 삐삐

박진섭 지음

 어릴 적 동네 길거리에선 인상이 좋아 보이는 아저씨들이 이따금씩 종이박스 우리 안의 병아리들을 파셨다. 어린 나는 삐약삐약 하는 소리에 홀려 쭈그려 앉아 병아리를 바라보며 시간 가는지 모르고 한참을 넋이 나갔었다.


 하루는 엄마 손을 잡고 병원에 가던 날 익숙한 길목에서 병아리 장수 아저씨를 만났다. 병아리 덕후였던 나는 안간힘을 다 쓰며 엄마를 졸라댔고 평소에 무언가를 사달라고 떼쓰지 않던 어린 나의 생소한 떼에 엄마는 흔쾌히 500원짜리 동전을 건네주셨고, 나는 병아리를 살 수 있었다. 처음으로 돈을 주고 생명체를 구매해 본 순간이었다.


 병아리를 데려온 그날 엄마는 베란다에 종이박스로 된 병아리 집을 만들어 주셨고, 나는 병아리의 이름을 아리로 할까 삐삐로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삐삐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루 종일 병아리만 쳐다봤던 것 같다. 노랗고 조그마한 생명체를 또 다른 동생이라 생각하며 삐삐를 연신 불러댔다.


 삐삐는 새로운 집에 오고 나서 거실 바닥을 내내 뛰어다니느라 지쳤는지 저녁이 되어서야 잠들었고, 나도 내 방에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베란다 제 집에서 따뜻한 아침 햇살을 맞고 거실로 나온 삐삐는 내 방까지 달려와 유치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의 발가락 사이사이를 삐약 거리며 쪼아댔다. 하나도 아프지 않고 따뜻하고 간지러운 그 느낌에 기분이 많이 좋았다. 삐삐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삐삐를 뒤로하고 유치원에 간 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 매 순간 안달이 났다. 삐삐를 빨리 보고 싶었다. 삐삐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유치원 수업 시간이 왜 그렇게도 길게 느껴지던지 하원 시간이 되자 나는 집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손에 들었던 실내화 주머니인지 도시락 주머니인지가 격하게 흔들릴 정도로.


 이런 행복한 하루하루를 반복하던 나흘째 되던 날. 여느 때처럼 집에 도착해 삐삐부터 찾는 나를 보고 엄마는 왜인지 어쩔 줄 몰라 하셨다. 그날도 역시 신발을 벗자마자 곧장 베란다로 갔더니 삐삐 집 앞마당에 깔려 있는 신문지 위에 삐삐가 두 다리를 곧게 뻗은 채로 엎드려 죽어 있었다. 어린 생명체라 새로운 환경에서 단시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삐삐가 죽어있던 모습은 삐삐로 인해 행복했던 지난 4일 동안의 날들을 무참히 덮는 충격이자 슬픔이었다. 


 난 곧장 내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무릎에 머리를 박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하루 종일 눈물 콧물이 마를 새 없이 울었다. 7년 인생에서 처음 느껴본 가장 강력한 정신적 고통이었다. 당시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외할아버지께서 진섭이가 보고 싶으시다고 검은 봉다리 가득 양갱을 사들고 집에 놀러 오셨음에도 난 싹퉁바가지 없이 인사도 드리지 않았다. 내 방의 문을 걸어 잠그고 몇 시간 동안 거실로 나가지 않았다. 그날 나의 그림일기장에는 죽어 있는 병아리의 모습과 양갱을 사 오셨던 선한 모습의 외할아버지가 그려졌다. 그리고 늦은 저녁 퇴근하신 아빠와 함께 집 근처 흙바닥에 삐삐를 묻어주며 생각했다. 삐삐야 좋은 곳에 가라고, 이제 다신 병아리를 사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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