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섭 지음
약 2년간 멀어졌던 친구가 있다. 가장 소중한 친구 중 한 명인데,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가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그런 친구의 태도에 기분이 상한 나도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유도 모른 채 나와 그 친구는 더 더 멀어졌다.
주위 친구들은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고자 했다. 무언가 서운한 게 있어 보이는 그에게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 한다고 친구들은 말했지만, 2년 동안 응어리진 마음을 먼저 풀 자신이 없었다.
연락이 끊긴 이후로 그 친구 꿈을 많이 꿨다. 꿈에 나올 정도라니 많이도 속상했나 보다. 어느 날 다른 친구의 생일파티 날이었다. 나는 당일 선약도 있었고 멀어진 친구가 있는 자리였기에 생일파티에 선뜻 참석하기가 힘들었다. 선약 자리가 끝날 때쯤 친구들은 2차로 간 상수역 근처 자취방으로 오라며 연신 카톡을 보냈고, 멀어진 친구와 풀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급한 마음을 안고 자취방으로 향했다.
자취방에 들어서니 친구들 대부분은 술에 많이 취한 상태였다. 나와 멀어진 친구는 나에게 어색한 태도를 보였다. 다 같이 건배를 할 때 그 친구에게 물어봤다. 나에게 서운한 게 있느냐고. 그 친구는 그런 거 없다고 말했다. 자취방에서 술을 마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은 막차가 끊기기 전 집에 가자며 짐을 챙겼다. 멀어진 친구를 억지로 붙잡아 놓을 수도 없는 상황에 나도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나는 상수역에서 지하철을 타려 했고, 자취방 주인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친구들은 버스를 타러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려 했다.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역으로 가려는데 나와 멀어졌던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로 뛰어왔다. 상상도 못한 녀석의 움직임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 (우리는 이후 이 사건을 “우정의 위화도 회군”이라 명명했다.) 놀란 나는 지하철 막차가 끊기기 전에 어서 뛰어가자 말했고, 늦은 시간 사람이 거의 없는 지하철 안에서 우린 서로의 속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친구는 역시나 나에게 서운한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2년 전 잠시 백수로 지내던 친구에게 인스타그램 DM으로 던진 장난 섞인 한마디가 친구에겐 가시가 되었었나 보다. 친구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저 장난으로 넘길 수 있었던 나의 말이 그땐 너무 서운했다며 본인의 2년 전 모습을 자책했다. 나 또한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이어 우리는 우리의 어리숙했던 태도와 찌질함을 반성했다.
깊은 이야기를 계속 나누다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연신내역에서 지하철을 내렸다. 마음이 아쉬운 나는 친구와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다. 지나온 시간 동안 못했던 얘기와 속상했던 마음을 녹이고 싶었는데 당시 코로나로 인해 영업시간 제한이 있었던 터라 갈 곳이 없었다. 친구를 붙잡아 둘 구실이 필요했던 나는 캔맥주를 사주겠다며 편의점으로 친구를 끌고 들어갔다. 이후 캔맥주 두 캔을 사고 나와 바로 앞 길바닥에 앉아 우린 이야기를 더 나눴다.
모든 건물의 불은 꺼졌으나 우린 단 하나의 편의점 불빛에 의존하며 그 아래에서 서로의 응어리를 마주했다. 그리고 연신 건배를 거듭하면서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우리는 이후 이 사건을 “우정의 단일화”라 명명했다.) 친구가 회군을 하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 서로를 등지고 있었을까. 먼저 용기를 내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