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셔츠를 입었다.
어제 조금 우울한 일이 있었다. 정말 긴박하고 무거운 일은 아니지만 한동안 일상에 취해 잊고 있던 인생의 묵직한 펀치에 오랜만에 골이 울렸다.
오늘 아침도 그 생각으로 개운하게 열지 못했다.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괜스레 베개를 주먹으로 꾹꾹 눌렀다. 딱히 당장 정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잊기 위해 확언을 건너뛰고 바로 아침 독서 시간을 가졌다.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반쯤 쌓인 빨래 바구니를 비웠다. 오랜만에 요리도 했다. 맛은 그냥 그랬다. 화장실을 청소했다. 분리수거를 했고 방에 거울을 닦았다. 옥상에 올라가 이불을 털었다. 내 공간이 주는 만족감이 내 우울함을 조금 잠재웠다.
오늘은 나갈 일이 없다. 보통 이런 날은 돌아다녀도 근처 음식점이나 카페를 간다. 이제는 발이 시리지만 이동 거리가 짧아 아직도 발 편한 슬리퍼를 애용한다.
오늘은 일상 다른 것들에서 더 많은 행복을 찾고 싶었다. 전 직장을 퇴사 후 잘 입지 않는 흰 셔츠를 꺼냈다. 손목에 새겨진 이름을 오랜만에 보곤 속삭이듯 읽었다. 옥스퍼드 구두와 검은 슬랙스를 깔 맞췄다. 때깔 나게 정장을 차려입고 싶은 기분은 아니어서 마무리를 캐주얼하게 후드티를 레이어드 하고 따뜻한 겉옷을 걸쳤다. 자주 뿌리지 않는 향수도 뿌렸다.
눈썹을 그리고 쉐딩과 살짝 색이 있는 립밤을 발랐다. 무언가 바르는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풀메이크업이다. 현관 출구에 있는 전신 거울을 보니 무언가 뿌듯했다. 제일 윗단추가 숨 막히던 작년과 다르게 손가락 하나 반 정도 여유가 있다.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아, 이게 소확행이지.'
미소가 떠오른다. 나는 오후와 저녁을 행복하게 보낼 자신에 차올랐다. 지금 내가 하루를 소중하게 보낼 전투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때로는 마음이 바로 서지 못하는 때가 온다. 나는 그럴 때 몸을 바로 세우려고 한다. 굽은 목과 등을 벽에 기대 펴준다. 공간을 정리하고, 나를 꾸민다. 제대로 못 하더라도 식단을 챙기고 영양제를 챙긴다. 몸이 바로 서면 마음을 챙기는 것이 수월해진다. 오늘을 마치고 내일 아침이 오면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행복할 것이다.
삶을 잘 살아가는 것, 인생의 긍정적인 스노우볼을 굴리는 방법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