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 봬도 어른이니까

by 작가미상

-이래 봬도 어른니까-

작가가 된 기념으로 분위기를 좀 내보겠답시고 이래저래 궁상을 피우다 보니, 떨어졌던 일상의 행복이 한 40%쯤 회복된 기분이 들었다. 행복하다는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이상하게도 무서움이 함께 밀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죽음 같은 단어가 머리를 스치면, 주변은 더욱 주황빛으로 물들곤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막 일어난 참이라 퀭한 얼굴을 마주한다. 그러다 보면 죽음을 생각 하기엔 너무 억울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현실로 돌아오곤 한다.


죽음뿐 아니라 과한 생각에 머리가 뜨끈해질 때도 이 방법을 자주 써먹는다. 웬만한 해열제보다 효과가 좋은 듯하다. 이런 이유에서 일까, 내가 아직도 민간요법을 고집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그렇다고 상 처에 된장 대신 후시딘을 바르지 말라는 건 아니다.


며칠 전에는 강아지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신약이 개발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워낙 진짜니 가짜니 말 많은 세상이라 반신반의하는 중이지만, 나무껍질 속 수액이나 개미들이 빨아먹는 즙에도 관심을 두는 나는 꽤 오래 이 뉴스를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민간요법조차 듣지 않을 만큼 마음이 멍해지는 날이면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만약 그 신약이 인간에게도 쓰일 수 있다면 어떨까.

반려견은 주사 한 방에 백만 원으로 6개월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던데, 우리는 몸집이 더 크니 한 달에 한 번 맞는다고 치자. 그렇다면 사람들은 매달 백만 원짜리 주사를 맞기 위해 기꺼이 줄을 설까? 누군 가는 건강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누군가는 월세를 내기 위해 줄을 설 것이다. 문제는 그 백만 원짜리 주사를 맞을 수 있는 사람이 '살 자격'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할 때다. 모두가 백만 원을 낼 수 없다 면, 어떤 몸은 치료받고 어떤 몸은 그냥 아파야 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또 한편으론 나는 그 줄에 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돈보다 더 두려운 건, 그 주사가 매달 죽음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차라리 민간요법이나 믿고,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고 눕는 게 낫겠다. 빵빵하게 틀어진 에어컨 아래 포근한 이불을 덮으며, 오래 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우울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겼다.

어린아이는 앞으로 겪을 경험에 흥미를 느끼지만, 나이 들수록 우리는 새로움보다 '새로웠던' 경험을 꺼내 살게 된다. 기억은 현재를 앞지르고, 감정은 낡은 장면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이래 봬도 어른인 나 도, 이제는 새로운 경험보다 늘 내 몸을 직탄으로 관통했던 계절을 기다리는 쪽에 더 가까워졌다. 특히 부모님 손을 꼭 쥐어잡던 겨울을.

월, 화, 수,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