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어라)
하고픈 말이 많아도 늘 아뇨, 뭐 그냥 이라며 얼버무리고, 속으로 괄호를 열고 닫으며 말하던 내가, 어느 날 속담 하나를 발견했다. 나처럼 몇 자 안 되는 짧은 문장 안에, 괄호 속에만 몰래 밀어 넣던 말과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이 참 매력적이었다.
속담을 처음 접한 건, 귀찮음을 담당하는 뇌의 크기가 기형적으로 커져가던 무렵이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속담에 관한 게시글 하나를 보게 됐다.
"사과가 되지 말고 도마도가 되라
사과처럼 겉만 붉고 속은 하얀 사람이 되지 말고, 토마토처럼 겉과 속이 같은 견실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웃기지 않은가. 토마토도 아니고 '도마도'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그 짧고 어설픈 말 안에 묘하게 많은 뜻이 들어 있는 것도 그렇고.
나한테 딱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매력적인 속담과 친해지기로 했다. 속담에게는 평생소원이 누룽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평생소원이 누룽지:
기껏 요구하는 것이 너무나 하찮은 것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깝게 지냈던 지인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난 후, 그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걸 보니 나만 아직 힘든 건가 싶기도 하고, 목표라는 것에 확고한 미래를 걸고 손을 뻗어 조커 카드를 피해 가는 친구들을 보며, 요즘 들어 살면서 가장 우울한 날이 시작된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갓 쓰고 양반 행세를 하려는 건 아니다.
갓 쓰고 양반 행세한다:
남의 좋은 점을 시기하고 헐뜯는다는 뜻이다.
도마도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내 가치 판단은 사과라는 걸 알게 됐다. 항상 웃고 있지만 입은 썩고,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속은 뒤집혀 있고, 거 참, 사과도 잘 익었구나 싶다.
먹기 좋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우울하다'라는 감정은 참 하얀 것 같다. 잠에 들 때면 무엇인지 모를 어둠 속에 기괴한 얼굴이 튀어나올 것 같고, 벽 쪽으로 돌아누우면 내 등 뒤에서 출수록 양양거리는 존재감에 등을 붙이게 된다. 그냥 왼쪽, 오른쪽, 중앙 순서대로 돌려 누웠을 뿐인데, 나는 방랑한 사후세계를 만들어낸 셈이다.
줄수록 양양거린다:
주면 술수록 부족하게 여기고 더 요구하게 된다는 뜻이다.
감과 고용은 두들겨 따야 잘 열리고, 거미도 줄을 쳐야 벌레를 잡는다고 하는데, 멀티태스킹이 힘든 저는 감과 고용을 거미줄로 칭칭 감아버려 그만, 벌레만 꼬였습니다. 여전히 겉과 속이 다른 사과일지 모릅 니다. 그럼에도 끈적이는 거미줄 사이에서 먹이를 찾아 먹으면서 '도마도'가 되고 싶다는 작은 소망만큼은 괄호 속에 가두지 않으려 합니다.
감과 고은 두들겨 따야 잘 열린다:
무슨 일이든지 이치에 맞게 해야 큰 성과를 이룬다.
거미도 줄을 쳐야 벌레를 잡는다:
무슨 일이든지 거기에 필요한 준비가 있어야 그 결과를 얻는다.
묵북한 하루들이 언젠가 씨앗이 될지 모르지만, 방랑한 사후세계에서도 먹을 수 있는 도마도 한 알을 닮아가길, 브런치스토리 여러분이 옆에서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