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생각'이라는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머리가 터져버릴 정도로 쏟아지는 생각들 때문이다. 이 생각들을 말이 아닌 글로라도 내뱉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덕분에 머릿속 배터리는 살짝 절전 모드로 돌 아간 것 같지만... 아직 13.4퍼센트밖에 충전되지 못한 게 현실이다.
요즘처럼 날이 더워지면, 생각에도 열이 오른다. 머리 안까지 활할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사람들이 덥고 습할수록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것도, 어쩌면 이 때문 아닐까. 뜨겁게 달궈진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올 때, 무엇을 상상해도 결국 화가 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특히 내 과생각에 대한 집착이 더 심해진 듯하다.
나무가 많은 인도를 걸을 때, 예전엔 그저 나무껍질의 질감 정도만 느꼈다면 요즘은 껍질 안의 향기, 맛, 심지어 스스로 상상한 나무의 이성적 판단 까지 도달해 버린다.
아무래도 나는 꽤 심각한
HSP(Hypersensitive Person), 초민감자인 것 같다.
HSP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건, 최근 읽고 있는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라는 책 덕분이다. 책에는 HSP 자가진단 체크리스트가 있었는데, 총 23개 항목 중 13개 이상 해당되면 HSP라고 한다. 나는 무려 21개나 해당됐다.
13개만 넘겨도 민감한 편이라는데, 21개쯤 되면 그냥 심한 초민감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초민감자는 보통 타고나는 기질이라고 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주 울고 쉽게 싫증을 낸다. 나는 당시 산부인과에서 4.3kg이라는 역대급 무게로 태어나, 평균 16~17시간 자 야 하는 신생아 시절에도 단 8시간만 자고 남은 시간 내내 울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태어날 때부터 HSP였던 게 아닐까 싶다.
(=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의 속을 꽤나 썩인 아기였던 거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 어릴 땐 어땠어, 엄마?"라는 질문에 괜히 한숨부터 쉬는 엄마의 표정을 지금처럼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다.
책에 따르면 HSP의 장점 중 하나는, 정보 처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민하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실제로 외국 영재협회 설립자의 연구에 의하면, HSP 성향이 있는 아이들이 높은 관찰력과 집중력을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내 상태가 그걸 입증해 주기엔 너무 부끄럽고, 민망하니 이 부분은 기억에서 삭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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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HSP는 민감하게 정보를 수용하는 특성 덕분에 예술, 글쓰기 같은 분야에 흥미나 재능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재능은 잘 모르겠지만, 흥미만큼은 인정한다.
나무의 이성적 판단까지 상상해 버릴 정도니 어느 정도 흥미라는 것은 보장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조금 전에도 카페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눈을 마주쳤던 34세 나무씨가 "카페 덕분에 내 껍질의 가치도 좀 올랐어"라는 말을 던졌다.
수많은 정보를 흡수하는 중, 내 안에서도 돌연변이가 시작된 것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나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기에 '과생각'이라는 제목으로 연재까지 시작했고, 그 방지턱까지 만들게 된 걸까?
그래서 이번엔,
단 3분 동안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보기로 했다.
.. 흠. 무리였다.
손으로 옮기기도 전에 이미 생각이 15쯤 지나갔다.
...
나는 생각을 하나의 흐름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다.
항상 최소 세 갈래 이상의 사고가 동시에 돌아가는 상태다.
예를 들어 방금 글을 쓰는 사이에
1. '저녁에 남은 육회에 양념장 비벼 비빔밥을 해 먹어야지'라는 계획과, 그 동선까지
(집에 들어가 신발을 오른쪽 모퉁이에 벗고, 바로 화장실로 가서 펌프질 두 번, 어떤 옷을 입고 나올지...)
2.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컵 주변 물방울을 세고, '그 물은 무슨 맛일까?'라고 상상하고,
3. 어제 고민 상담해 줬던 이웃에게 보낸 답장을 다시 떠올리며, 내 삶을 되짚는 중.
이 세 개 정도가
내가 동시에 하는 평균적 사고의 양이다.
가끔은 지나가는 모든 사물들을 눈에 담고 싶어진다.
동물적인 본능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의도하지 않아도, 눈을 감아도, 정보는 어김없이 들어온다.
그래서 HSP들은 집에 도착하면 지쳐서 바닥에 눕는다.
실제로 두통이 오기도 한다.
혹시 당신도 10분 전의 일을 기억 못 한 적이 있는가?
나는 그걸 피하려고 어릴 적부터 눈을 자주 깜빡이며, 의도적으로 기억에 저장하려 애썼다.
남들도 이런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그저 너무 고생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세상 속에서도 가정을 꾸려낸 부모님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초민감함에도 단점은 있다.
무언가를 공부하려고 하면 집중력이 쉽게 깨진다.
흥미가 생긴 것에만 광적으로 몰입하고, 그 외의 것들은 흡수가 잘 되지 않는다.
결국 이건 자기 한탄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나는 귀든 눈이든 입이든, 뚫린 구멍이면 어디든 정보를 넣어보려 애쓴다.
하지만 그 구멍마다 이미 자리 잡은 건 카페의 전등 불빛, 공기의 냄새, 무게 같은 잡생각들이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언제나 인내심의 끝을 경험해야 하고, 그 결과는 지네 독 뽑기만큼이나 적고 고달프다.
하지만 이걸 저주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성장을 위한 과정'이라 믿는다.
위버멘쉬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오히려 흔들려라 " 그건 어제 내가 고민 상담했던 이웃에게 해준 말이기도 하다.
역사 속 모든 혁명은 흔들림에서 시작되었다.
그 흔들림은, 결국 단단해지기 위한 기반일 것이다.
그러니 잊지 말자.
흔들릴지언정,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 흔들리는 것임을.
이제는 Just do it'을 넘어, How to do it으로 넘어가야 할 때다.
결국, 인생이라는 궤도를 가늠해 보는 기회로, 나는 오늘도 흔들릴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