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전쟁 1

구조를 바꾸는 건 많은 감정이 사용된다.

by 작가미상


오랜만에 방의 구조를 바꾸려고 한다. 6~7년 동안 같은 구조만 보니 권태기가 온 듯하다. 점점 좁아져만 가는 크기에 그만... "질린다, 방아. 라는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다. 구조를 바꾸기엔 큰 용기가 필요하


많은 옷과 책들, 그리고 회색 연기를 내뿜는 먼지들 사이에서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글을 쓰기 위한 완벽한 작업 구조를 고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수부대에게 은밀한 작전을 내세워 급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더욱 쉽게 진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적들이 겁 없이 인구수만 늘리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재앙을 모르고 말이다.

(특수부대들은 저의 얄팍한 생각들입니다)


일단 나를 붙잡고 싶어 안달 난 하얀색 매트리스를 뺐다. 먼지들이 엄청난 요동을 치는 걸 보니, 보통 이상의 충격을 받은 듯하다. 얄팍한 생각들의 효과는 굉장했다, 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을린 갈색 피부의 스 프링 중사가 많은 전장을 나선 바람에 사지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중사는 꽤나 강했다. 하지만 점점 커져 가는 나의 존재감에 그만 패배하고 말았다.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기엔 그동안 겪은 허리 고 통과 맞먹는 교환이라 판단했기에, 하고 싶은 말들은 자존심 주머니에 꼭 넣어 두도록 하자. 어떤 이는 우리의 짜증과 고통에서 활기와 행복을 얻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다음은 회색과 검정색 옷장을 뺐다. 포탄에 맞은 듯 구석구석 파여 얼룩덜룩한 속살도 보이고, 손으로 밀면 금방이라도 힘이 풀릴 것 같은 회색 옷장과는 참호전을 한 지 2025년에 들어 15년이 되어 간다. 엉 망진창으로 널브러져 죽어버린 수많은 옷들이 알록달록 피를 흘리며 그 잔혹함을 드러낸다. 인권 보호니 뭐니, 상대의 예의를 지키기 위한 옷들의 장례는 구조가 바뀌면 하도록 해야지.


참호전을 멀리서 지켜봤다는 듯 참전 3개월에 접어든 검정 옷장은 스스로 바퀴를 만들어 잘도 굴러갔다. 지원하러 온 입장에서 생각하면 얄밉고 화가 났겠지만, 팔만 늘어난 녹색 긴팔 전우, 바지 지퍼가 열린 채 다리가 꺾인 진청 전우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다음은 내가 태어날 때 산 책상이다. 이젠 그만 보내줄 때가 됐다. 오래 버텼다. 남아 있었고,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다. 흔들리는 다리, 까진 모서리, 긁히고 벗겨진 표면. 손바닥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던 그 거친 질감은 이제, 더 이상 익숙하지도, 애틋하지도 않다. 오래된 전우라 부르기엔, 나는 그 사이 꽤나 많이 변해버렸다.


책상을 치우자 바닥의 먼지와 오래된 종이 살점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어느 전투에서 끊어졌는지 모를 종이 조각들, 모서리가 말린 쪽지, 기억도 안 나는 낙서, 내 방 한구석에 이렇게 오래 숨어 있었던 것들이 많았고 다 걷어내지 않으면 새 시작은 없었다.


바닥을 제대로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눌린 자국들, 기울어진 흔적, 보이지 않던 틈새들. 오랫동안 가구들이 덮어왔던, 말하자면 이 방의 속살 같은 곳이었다. 햇빛도 못 보던 자리가 이렇게 낯설 수 있구나 싶 었다. 그래도, 이렇게 드러내야 숨통이 트인다. 누군가는 지저분하다고 할 테지만, 이 정도 진창쯤은 이 전쟁에선 당연하다.


창문을 열었다. 오래 닫혀 있던 창문 사이로 바람이 밀려들었다. 쌓인 먼지들이 흩어졌고, 바닥 위로 빛이 뚫고 들어왔다. 먼지는 조금씩 가라앉았고, 나는 그 사이에 서 있었다. 이 방의 낡은 구석구석, 그 속에 서 참 많이도 버텼구나 싶었다. 한숨을 크게 내쉬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렇게 비워낸 자리에 새 책상이 들어올 예정이다. 새 의자도. 새 가구들, 새 구조, 새 공기. 기대라기보단 조심스럽다. 또 언제 이 방에 질릴지 모르니까. 그래도 지금만큼은, 다가올 그 새 것들을 그냥 가구로 만 대하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사랑할 필요도 없고, 억지로 미워할 이유도 없다. 때가 되면 또 전쟁은 시작되겠지만, 그 전까지는 잠시, 숨 좀 쉬자.

월, 화, 수, 목 연재
이전 04화초민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