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조건은 최소 30년은 되어 보이는 목재로 지어진 집이다. 단단한 콘크리트보다 세월에 스며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나무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집은 시간이 지나도 배신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거실 불을 켜면 나무 색에 비쳐 은은한 갈색을 띠고, 때로는 주황빛으로 반짝이기도 한다. 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전기구이 통닭 두 마리, 그리고 똥집을 먹으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거짓 없이 털어놓는 것을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삼고 있다. 자식들이 사춘기가 찾아오면, 나는 혼자 말하겠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그 대화가 흘러나오는 배경 음악의 볼륨이 ‘14’ 정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들릴 듯 말 듯한 그 소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만약 그 상황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분명 꽤나 값어치 있는 미니어처처럼 보일 것이다. 지붕이 가려 안 보일 수는 있지만, 낭만은 현실을 이길 때 더 아름답다.
세 번째 조건은 2층 주택이지만, 1층만 사용하는 구조다. 나는 쓸데없지만 신기한 물건들을 좋아한다. 가족이 생기고 경제력이 생기면 포터 트럭 한 대에 잔뜩 채워 사고 싶은 것들이 이미 마음속에 가득하다. 물론, 아이들도 좋아할 물건들을 넣고 싶지만, 내 욕심도 조금은 부려보고 싶다. 그래서 일단은 손에 쥘 수 있는 정도의 작은 것들만 사두기로 했다. 어릴 적, 엄마가 안 사준다는 닌텐도 칩을 아빠가 몰래 사줬던 기억이 있다. 그 순간 아빠와 나는 20년 지기 부랄친구가 됐다. 그땐 13살이었지만. 나중에 엄마가 그걸 알아차리고는 대대적인 집 정리 대작전이 벌어졌고, 결국 아빠와 나는 패전국이 되어 장난감을 처분해야 했다. 그 상처는 성인이 된 지금도 샤워할 때마다 아려온다. 그래서 내가 사는 집은 2층이지만 1층만 쓰고, 2층은 아이들의 장난감 창고로 가득 채울 계획이다. 가끔 아내가 의심하면, 아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적힌 노트에서 항목 하나를 지워주며 시선을 돌리는 스킬도 필수다. 아내는 자식과 남편이라는 자식을 함께 키운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네 번째 조건은 방은 4개, 화장실은 2개. 전제가 맞는다면 나는 자식은 둘까지만 키우고 싶다. 물론 아내에게는 무책임한 말일 수 있어, 이렇게 글에만 적어둔다. 기술이 발달하면 도라에몽이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해본다.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과 함께 잤지만, 결국 각자 자는 게 편하다는 걸 알게 됐다. 함께 살아도, 몸은 항상 가까이에 둘 필요는 없다. 그래서 방은 최소 4개, 많게는 5개가 적당하다.
결국 내가 말하고자 했던 집은, 도시 속에 조용히 숨어 있는 30년은 족히 넘은 듯한 마당 있는 올드한 주택이다. 가장 걱정되는 건, 아이들이 “우리만 집이 다르다”며 찡찡대는 것인데, 그만큼 특별하다는 인상을 어떻게든 심어주는 게 나의 과제가 될 것 같다. 이렇게만 보면, 시간의 평행세계가 어긋나 어쩔 수 없이 현대시대로 오게 된 조선시대의 웅장한 궁궐 같은 상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집은 현대에 잘 녹아들면서도 아기자기한 것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자세히 보면 둘인 것이 다섯으로 보일 때까지, 디테일이 살아 있는 그런 집. 누구나 마음속엔 ‘내가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뭔지 모를 패배감을 주는 차일 수도 있고, 안에 뭐가 들었을지 궁금해지는 가방일 수도 있고, 기분이 전해지는 가구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