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야, 돌아와

by 작가미상


지친 하루 끝, 저녁 8시. 집에 오는 길에 킁킁, 고소한 순대 냄새가 났다.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순대 트럭이 공터에 말뚝을 박았다는 신호였다. 권태로운 일상에 던져진 작은 파동. 나는 못 이기는 척, 허름한 옷가지 위로 겉옷을 걸치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거울에 비친 엉망인 머리, 피곤에 절은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혹여 내 몰골을 보고 순대의 맛이 상할까.'


순대 트럭까지는 대략 2분 10초. 이 짧은 시간은 내게 작은 의식과도 같았다. 좁은 아파트 현관을 벗어나면, 자동문이 뜨거운 바람을 내뱉으며 숨 막히는 현실로 나를 밀어냈다. 나는 미리 숨을 참고, 막막한 공기를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몸의 땀구멍들은 쫄깃한 순대의 맛을 갈망하고 있었다. 냄새를 따라 고개를 돌리면, 어깨가, 허리가, 다리가, 발가락이 차례로 따라갔다. 뼈와 살들이 질세라 부리나케 걸음을 옮기면, 바퀴 자국에만 관심이 있던 도로 위에도 순대에 대한 나의 기대감이 새겨졌다. 어쩌면 내 신발의 밑창이 되어주었던 시간의 연혁을 도로가 모두 꿰뚫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기어코 순대의 무늬를 그 위에 남겼다.


까마귀 공원 앞, 20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켜온 나무에게 묻는다. "오늘 순대는 어때요?" 나무는 늘 그랬듯, 대답 대신 손가락 하나 분량의 껍질을 툭 바닥에 내려놓았다. 껍질이 벗겨진 자리에서 피톤치드와 순대 냄새를 합친 듯한 피톤순대치드가 물씬 풍겨왔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무가 20년 동안 굳이 말을 하지 않았던 이유를. 귀보다는 코로 느끼는 것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냄새는 단순한 공기 입자가 아니라, 기억과 추억, 그리고 상상력을 불러오는 무형의 실체였다. 순대 냄새에 취했던 나는 잠시 동안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았다.


모래가 조금 섞인 아스팔트 인도를 걷다 보면, 곧바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이 순대 트럭이었다. 나는 달려가 외쳤다. "아저씨, 맛있겠어요!" 어쩌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아저씨도 그에 못지않게 대답하셨다. "너도 참 순대로 만들면 대박 나것어." 충청도식 유머랄까. 아저씨는 순대뿐 아니라, 삶의 피로를 잊게 하는 너스레까지 함께 파는 분이었다.


어느 선선한 날, 트럭 앞에서 줄을 서던 때였다. 뒤섞이고 엉키는 사람들 때문에 순서는 똬리를 틀었고, 결국 돈을 먼저 내미는 사람이 순대를 먹게 되었다. 그때 사장님은 "아이고, 사인은 나중에 다 해줄 테니 줄 좀 서요."라고 외치며 소규모의 진탕 싸움을 단번에 잠재우셨다. 순대를 향한 사람들의 집착은 어쩌면, 각자의 고단한 삶에서 오는 작은 위로를 쟁취하려는 치열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오늘은 운이 좋게도 나밖에 없었다. 곧바로 순대 2인분을 싸 들고 나무와 도로에게 자랑할 생각에 가슴이 더욱 커졌다. 그런데, 트럭이 없었다. 봄 뒤에 여름이 오듯, 순대도 더위에 마음이 상할까 잠시 쉬는 것이라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큰 충격은 아니었다. 다만 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려는 뼈와 살들을 부여잡았을 뿐이다. 그동안 맡아왔던 순대 향기가 꽤나 깊게 박혀있던 탓에, 목요일만 되면 특정 코털이 휘날리며 나를 속인 것이 분명했다.


멜랑콜리한 냄새가 만들어낸 풍성한 연기는 없던 충청도 말을 지어낼 만큼 인간에게 취약한 부분이었다. 냄새는 기억을 냄새 맡게 하고, 냄새는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살게 했다. 나는 코털을 부여잡고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텅 빈 공터, 낮게 깔린 어둠 속에서 나는 냄새의 잔상만 더듬고 있었다. 코끝에 맴돌던 순대 냄새는 이제 의지가 되지 못했고, 그저 씁쓸한 바람이 되어 콧속을 훑고 간지러움은 덤으로 주었다.


쓰윽 코를 뒤집고 돌아가는 길. 발걸음은 무거웠다. 순대의 무늬를 새기려 했던 내 신발 밑창은, 이제 허탈함만 가득한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나무는 아무 말 없이 나뭇잎을 팔랑거리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왠지 모를 억울함에 중얼거렸다. "오늘 순대는 없대요." 나무는 늘 그랬듯 대답 대신 껍질을 하나 더 툭 떨어뜨렸다. 그 껍질은 순대 트럭이 있던 자리로 굴러가 멈췄다. 마치 나의 허탈한 마음을 이거라도 보며 배를 채우라는 듯, 나무의 장난은 나이가 들면서도 여전하구나 싶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텅 빈 공터에 순대 한 덩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뭇잎을 이불 삼아 덮고, 길 위의 아스팔트를 베개 삼아 잠든 순대였다. 내가 다가가자 순대는 움찔하며 눈을 떴다. "아이고, 미안혀. 너무 더우면 껍질이 껌으로 변햐." 꿈속에서 나는 순대를 안아 올렸다. 순대는 쫄깃한 몸으로 나를 감싸 안았고, 나는 그제야 지친 하루의 피로를 조금이라도 잊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공터로 달려 나갔다. 트럭은 여전히 없었다. 하지만 텅 빈 공터 한가운데, 어제 나무가 떨어뜨린 껍질 옆에 동그랗고 검은 순대 모양의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순대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나의 지친 하루를 위로해 주는 존재였음을. 상실의 아픔을 통해 나는 비로소 그 존재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았던 것이다. 우리의 삶은 늘 무언가를 기다리고, 때론 그 기다림이 허탈함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과정 자체가 삶을 채우는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순대는 내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목요일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순대야,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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