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우뚱 인간 심리, 그리고 에필로그

by 작가미상

(지글지글 후라이를 보고 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인간행동심리학 3주차다.


벌써 갸우뚱해지다니, 흥미롭다.


나의 강점을 생각하면 분노를 잘 다스리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고 하는데, 교수님. 강점이 있는지를 먼저 알아주시는 게 순서가 아닐까요? 강점을 생각하면 분노를 잘 다스린다… 흠. 그것을 넘어 삶의 생존에 있어 불안을 느끼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강점이라고는 생각이 참 다양하다는 것밖에는 없는 듯합니다.


수업이 10분쯤 지났을까. 교양이라 그런지 전공에 치이지 않게 시험 문제를 알려주시는 데,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교수님이 모두를 낚기 위한 미끼를 던진 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듯합니다. 사람을 너무 믿는 걸까? 그것을 의심하는 내가 이상한 걸까? 도통 모르겠습니다. 본인은 모든 비정을 다 맞아본 사람으로서 상대가 말하는 의도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것이 습관입니다.


교수님은 심리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시는데, 지난주 '후라이 달걀' 사건에 데인 학생들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교수님은 정답이 없으니까 아무거나 대답하라며 한 명 한 명을 지나 여쭤보지만, 역시 낚이고 난 이후이기에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미끼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죠. 정답이 없는 것에 강요를 하는 교수님에게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더욱 복잡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교수님이 알려주신 미끼 같은 시험 문제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은 학생들이 과거 미끼에 낚인 적이 있어 그러려니 넘어가는 걸까? 아니면 낚이지 않고 정말 시험에 나올까 봐 열심히 듣고 있는 걸까? 벌써 두 갈래의 심리적 갈등을 자아냅니다. 심리 교수라는 존재가 만만치 않음을 짐작합니다.


별다른 이야기가 없을 땐 모쪼록 최형준 작가의 《방랑기》를 꺼내 읽습니다. 유독 오늘따라 낡아진 방랑기를 보며 원래 그랬나 싶기도 하고, 1년 반이 넘도록 수십 번 읽은 탓에 닳은 건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손으로 느껴지는 오래된 종이의 눅눅함이 낯설게도 느껴집니다.


그간 함께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주 얼굴을 본 사이라지만, 책이 늙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 것에 대해 연유를 알아보자면, 책의 외모가 아닌 글과 함께 살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합니다. 늘 그래왔기에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비과학적 미신을 믿어버린 것입니다.


가족도 그렇지 않던가요? 문득 부모님의 얼굴을 볼 때면 나의 기억 속 10년 전 그들의 이미지와 다르게 주름이 두어 줄 박혀있고, 무거운 캠핑 용품도 번쩍 들었던 허리가 구부정해져 떳떳하지 못한 모습에 묘한 슬픔을 느낍니다.


그 비과학적 사실이 꽤 신빙성 있는 미신이라지만, 살아가는 모든 것에 그 미신은 자신의 피와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이패드를 지탱하는 아이패드 커버라든지, 4년을 쓴 깨진 아이폰이라든지, 가죽이 오래되어 갈라져 버린 시곗줄 같은 것들. 그것들도 괜찮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가 문득 반짝이게 보이는 눈으로 보곤 묘한 애정을 느끼곤 합니다. 문득 하나를 생각합니다. 피를 나눠야 가족일까.


“무슨 소리세요 교수님.”

별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의아한 눈을 만들어내게 하는 교수님의 질문에 말이 터져나왔다.


“그 사람이 행동하는 것의 결정은 과거의 행동 경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반은 동의하고 반은 틀리다고 하는 나의 입장에서 새로운 흥미를 느꼈습니다. 텔레파시가 있다고 가정하여 교수님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은 과거 실험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신생아가 특정 물건을 만질 때마다 크고 무서운 소리를 내어 버린다면, 결국 신생아는 특정 물건에 대한 과거의 소리에 공포심을 가지게 되어 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생아가 그것에 공포를 가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소리에 무덤덤하게 반응하여 오히려 그 특정 물건에 집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했던 걸까요? 분명 그 실험에서도 그런 경우는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신생아가 그랬다고 해서 모든 신생아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행동에 있어 그것에 영향을 주는 것은 과거력도 있지만, 이 작자는 작은 과거력을 가지고 더 큰 미래력을 얻기 위해 현실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를 판단합니다. 그것의 과정이 제일 합당하지 않을까요? 과거의 행동으로 지금의 행동이 결정된다고 진단한다면 결국 우리는 과거에 갇혀 산다는 것이 필수적으로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은 이뤄질 수 없는 희망고문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어떠세요? 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텔레파시로 전해드릴게요. 이진법보다 정보 전달력이 매우 낮지만, 제가 이 의견에 갸우뚱한다는 것은 확실히 전달될 것이라 믿고 찌릿 보냅니다.


아차차, 과제는 심리나 코칭에 관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더군요. 모르겠어요. 위에 글처럼 교수님의 수업에 소위 반항적인 말을 넣는다면 좋게 봐주실지 말이에요.


모쪼록 긴장하시고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참 애매한 쪽으로 비상하답니다.


다음 주에도 《방랑기》를 읽다가 툭 끊기는 말을 해주시겠죠.

설레는 마음을 냉장고에 넣어 상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에필로그


이 글은 여름에 시작해 겨울을 향해 달려가던 중 끝이 났습니다. 무작정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연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개강을 하고 나니 좀처럼 일정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브런치 스토리 편집자분들이 ‘과과생생각각’의 에필로그까지 봐주실 거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습니다. 저보다 더 훌륭한 작가님들이 세상의 모래만큼 많이 있으니까요. 다만 저만의 색깔 하나는 남들과 다르지 않을까 하는 자존심을 굳이 내세워봅니다.


인생에 있어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내던진 글들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용기를 가졌던 추억이, 앞으로의 굴절을 곧게 뻗어내는 데 무리라고 생각하지만은, 당장의 아픔 정도는 가볍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저의 글이 사람들에게 '읽힘 당하는' 날이 '과과생생각각'으로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부끄럽지만 자주 서면 되지만, 저의 글이 읽힘 당한다는 것은 부끄러움보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지쳐서 발을 멈추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를 응원하며, 이만 다음 책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 미상 올림.


월, 화, 수,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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