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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이나 먹고 명절에 혼자 센치해져 써본 글

#피터팬 #조던 피터슨 #피터팬 증후군 #명절 #구정 #시간 #28

by 영리치

지금은 명절, 구정이다. 할머니네 집에 와 이모들과 삼촌을 만나고 있다. 이모들이 나에게 묻는다. 니 나이가 지금 몇이니? 28이요. 다들 세월 참 빠르다는 반응이다. 애기처럼만 보이던 내 새끼, 내 조카가 어느덧 28이라니.


28이라는 나이는 27과는 차원이 다르다. 28은 20대 후반이고, 직장에 취업해서 일을 하고 있어야 하며, 결혼을 준비하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나아가야할 시기라고 생각하신다. 단순히 27까지가 낭만적인 대학생, 혹은 세상 다 가진 사회 초년생을 뜻했다면 28은 어른으로서 책임을 다 해야하는 나이로 인식되는 것이다.


오랜만에 간 시골 할머니 집에서 작은 이모를 뵈었다. 작은 이모의 흰머리가 세하다. 애써 나는 모른 척 했다. 예뻤던 이모도 어느덧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 하고 싶었다. 인간은 누구나 시간에 쫓기고 있고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엔 별로 관심이 없는 척.


우리 이모들은 중풍으로 쓰러진 할머니를 20년 째 수발 중이다. 할머니를 요양하기, 위해 자신들의 청춘과 삶, 커리어 모두를 바쳤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생식을 하면서 좋은 공기를 마시지만, 나이들어가는 것, 피부가 쭈글해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왔다. 이모들이 할머니를 저렇게 사랑하시니 하늘도 알아주실 것이라고. 이모들은 언젠가 큰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랬던 이모들은 어느덧 백발이 세한 할머니로 내 앞에 나타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벗어 날 수 없는 현실에 처했다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막연한 권선징악을 믿으며 하늘이 알아봐주길 기다려야할까? 아니면 내가 처한 현실 내가 처한 이 나이 들어감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어리고 팔팔할 때 와일드카드를 만들어야할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조던 피터슨은 피터팬의 소년성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정의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후크 선장은 잠재력을 상실한 어른을 상징하며, 시간(악어)에게 이미 신체의 일부분을 잡아먹힌 채, 언제 잡아 먹힐 지 모르며 고분군투하며 살아가는, 추한 모습을 하고 있다.


피터팬은 후크 선장과 같은 추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기에, 어른이 되는 것을 유예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선택을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다른 모든 옵션들의 희생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을 유예하기에, 피터팬은 '무엇이든 될 수 있으나 사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될 수가 없다.'


28의 나이는 더 이상 어른으로서의 선택을 유예하며 피터팬으로 남아있기는 어려운 나이이다. 이미 시간(악어)은 쫓아오고 있고, 사회는 나에게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2020년 나는 내 가치관에 따른 '선택'을 하겠다. 이것이 설령 내가 가진 다른 모든 옵션들의 희생을 의미하더라도 말이다.


원본 링크: https://bit.ly/2GoU92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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