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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픈 마음

마음 헤프게 쓰는 것도 어차피 다 내 욕심이다

by 서울일기


내가 절대로 되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항상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중이다. 그 중 하나가 나쁜 선배가 되는 것이었다.


“나쁜 선배”라는 말은 너무도 추상적이어서, 누가 정의하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을것 같다. 아니, “나쁜 선배”보다는, “좋은 선배”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좋은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다보니, 순간 내가 참 말도 안되는 허영심에 가득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잘 들어주고, 질문에 대답을 잘 해주고, 때론 의지가 되기도 하고 또 그 사람을 보면서 내 미래를 그려볼 때 좀더 긍정적인 생각이 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이 솔직히 지금의 나에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나는 내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요즘들어 회사에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후배들을 대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했던 나쁜 선배가 되지 않으려 때론 너무 의식적으로 애를 쓰게 되는데, 나는 도움을 주려는 의도였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애초에 “선배”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나는 그 후배에게 이미 불편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아버렸다. 그리고 나는 필요 이상의 마음을 너무도 헤프게 쓰고 있다는 것을.


더욱이 요즘 드는 생각은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이런 엉뚱한 생각과 의지 때문에 오히려 내가 후배들이 싫어하는 또다른 형태의 “나쁜 선배”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 두려워지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좋은 선배가 되고 싶었던건 어쩌면 단순히 후배들을 위하는 마음 뿐이 아니라, “나는 너와 다른 선배가 되었어”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게 아닐까.


게다가 오늘 집에 가던 길에 이런 고민을 동기에게 털어놓았다가 “나쁜 선배가 되면 좀 어때서? 뭐 어때?”라는 반문을 듣고,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 모든 헤픈 마음은 나의 오만과 교만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나의 허영심이 모든 불행의 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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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런 헤픈 마음은, 안타깝게도 어딘가에 가서 닿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며 쉰소리를 내고 있다. 참 이상하리만치 헤픈 마음이다. 나는 지난 주말에 엄마와 말다툼을 하면서 연락하지 말자는 말까지 내뱉었는데 말이다. 내게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토록 잔인해질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어쩌면 스쳐지나가는 인연들에게 친절해지려고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때론 참 우습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고쳐지지도 않고, 적당히 잘 지내다가도 불쑥 그 헤픈 마음이 고개를 들고 나와 허공을 휘젓고 다니는 것이, 그래서 그렇게 허공을 맴돌던 마음이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화살처럼 다시 내 마음으로 돌아와 내 심장을 아프게 찌르는 것을, 이제는 정말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욕심은 이제 내려 놓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굳이 그렇게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 나는 인간이기에 약점 투성이지만, 그래도 꽤 쓸만한 매력적이고 괜찮은 점들도 가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냥 무언가가, 어떤 모습이 되려고 하지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보자. 아니, 그냥 지금 그대로, 그대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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