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눕피의 단상단상(19)
귀에 이어폰을 꽂아 넣고 가장 안정적인 자세로 앉거나 선다. 앞, 옆, 뒤를 차례차례 돌아보며 이 사람, 저 사람을 관찰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대놓고 편하게 관찰하기 좋은 장소로 지하철만 한 곳이 없다.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대학원생, 열차 내 모든 먼지를 빨아들이겠다는 기세로 입을 잔뜩 벌린 채 잠들어 버린 직장인, 두툼한 서류 봉투를 한 가득 안고 있는 정체불명의 금시계를 찬 할아버지, 얼굴을 붕대로 칭칭 감고 모자를 푹 눌러쓴 원정 성형 출장 중국인, 세팅된 머리가 조금이라도 헝클어질까 염려하며 좌석에 엉덩이를 반만 걸친 채 스마트폰 화면에 비친 자신의 머리를 자꾸만 매만지는 위태로운 소개팅남, 형형색색의 아웃도어 웨어를 입고 반들반들한 호두 두 알을 손에 쥐고 연신 비벼대는 아저씨, 바나나 보관통에서 바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 누가 볼까 몰래 까먹는 여대생까지. 그들은 각자의 삶이라는 트랙을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열심히 달려 나간다.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다가 나는 늘 마지막에 그런 생각에 잠긴다. 그들의 목적지는 어디인지,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지, 그들을 사로잡은 요즘의 화두는 무엇인지, 내가 그러했듯 그들도 나를 봐주었는지, 그들도 한 번쯤은 나와 같은 생각을, 아니 비슷한 생각이나마 하면서 사는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부단히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늘 샤라웃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늘 더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생 텍쥐페리 형님의 말씀처럼 자기의 '구실'을 의식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