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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Feb 27. 2019

결혼을 세 번해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

스눕피의 단상단상(22)

결혼을 여러 번 하면 할수록 행복해지는 사람일지도 몰라. 그런 운명도 있는 거야.



대학 시절, 존경하던 은사 한 분은 광고계에 30년 가까이 몸 담으며 수많은 성공적 캠페인을 만들어 낸 원로 광고인이었다. 말하자면 팬티 속까지 광고에 젖어 살던 분이었는데, 첫 수업 시간에 '자기'를 소개하며 어린 시절의 할머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께서 늘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하셔서 늘 자신을 두고 "광고야, 광고야."라고 부르시는 걸 자연스럽게 들으며 자랐는데, 어쩌면 그때부터 광고인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우연과도 같은 점지의 싹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였다.

인턴 시절 만난 20년 차 광고기획자 한 분은 광고업계의 빡빡한 스케줄로 인해 결혼 생활 내내 크리스마스를 와이프와 제대로 한번 보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자조 섞인 미소를 남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 일이라는 것이 너무 좋고 광고를 기획하며 사는 자신의 삶이 아직은 행복하다고 말했었다.

내가 다녔던 유통 회사의 대표님은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대기업의 최정점을 여러 번 골라 찍은 그야말로 전설적인 샐러리맨이었는데, 신입사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한때는 자신이 일에 단단히 미쳐서 백화점 창고에서 매일 한두 시간씩 쪽잠을 잤다는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그는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후회한다고 말했었다.


"저런 인생, 나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직업, 취미, 전공, 특기, 습관, 관계에 이르기까지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여자라는 것> 속 주인공의 말마따나 결혼을 여러 번 하면 할수록 행복해지는 사람도 이 세상 어딘가엔 분명 존재하는 법이고, 빵에 미쳐서 평생을 빵만 바라보며 빵을 위해 사는 바게트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며, 웨이트 트레이닝에 미쳐서 하루 20시간을 탈진할 때까지 운동에 매진하는 것이 세상 지고의 기쁨인 사람도 어쩌면 있을 수 있는 법이다.

음, 상대방의 인생을 쉽게 판단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판단을 어느 정도 유보하며 사는 것도 괜찮은 세상살이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뭐 우리는 인간이니까. 그리고 인간 팔자는 알 수가 없으니까.



"세상엔 이상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범죄자들은 피나게 노력해서 기발한 계획을 짜 놓고는 결국 그것 때문에 감방에 들어가지. 그리고 감방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다시 똑같은 일을 저지르길 되풀이하고 또다시 감방에 들어가. 만일 그만한 노력과 영리함과 자원과 인내심을 다른 정직한 일에 쏟는다면, 남부럽지 않은 위치에 올라 꽤 잘 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들은 태어나길 그런 사람으로 태어난 거야. 범죄를 좋아하는 거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에 너무 강하게 사로잡혀서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그들은 어떻게든 그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지. 그 열망을 충족시키려면 다른 모든 걸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거고."


서머싯 몸 <면도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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