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이 많고 둘레가 없는 원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인터넷의 바다를 유영하다가 뉴요커 매거진의 1월호에 실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CREAM’과 만났다. 필립 가브리엘이라는 사람이 영역한 버전인데, 길이가 아주 짧고 소설 내 어휘가 그렇게 어렵지 않아 부드럽게 읽혔다. 묘한 감정을 부르는 하루키 특유의 묘한 소설이라서 다 읽고 나니까 기분이 묘했다. 그래서 묘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 KATIE의 이번 앨범 <LOG>를 플레이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서 갑분KATIE, 이 말도 안 되는 흐름 보소?
그나저나 하루키도 늙긴 늙었나 보다. 앞으로 남은 시간, 그가 젊은 친구들을 향해 던지고 싶은 이야기가 꽤 분명해 보인다. 소설가가 직업의식을 다해 죽기 전에 유언장을 소설의 형식을 취해 작성한다면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다.
하루키의 단편은 실망을 주는 일이 없다. 마치 체호프의 단편처럼, 새벽 3시의 꼬들꼬들한 라면처럼, 서브웨이의 랜치 소스와 사우스 웨스트 소스의 미친 조합처럼.
소설의 주요 내용을 아래 옮겨 본다.
(죄송합니다, 스포일링 그 자체입니다.)
소설은 주인공 ‘나’가 과거의 자신에게 일어났던 이상한 사건 하나를 어린 친구에게 말해주는 형식을 취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립대학 입시에 실패한 다음 해, 일종의 재수생 신분으로 입시 학원이 아닌 지역 도서관에서 발자크 등을 읽으며 시간을 죽이고 있던 열여덟의 10월, ‘나’에게 피아노 연주회 초대장이 하나 날아든다. 그것은 학창 시절 피아노 레슨을 함께 받은 적이 있는 1년 아래 여자 후배로부터 온 것이었다. 열여섯이 되고 피아노 레슨을 그만둔 이후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녀였다(딱히 그녀와 개인적으로 얽힌 일은 없었다). 그녀가 보낸 초대장에는 정확한 시간과 장소가 명기되어 있었고, 연주회는 3명의 피아니스트가 함께하는 그룹 공연이라고 했다. ‘나’는 시간이 남아돌았기에 그녀에게 연주회 참석 의사를 담은 답장을 보낸다.
공연이 있던 쌀쌀한 11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한큐전철에 버스까지 갈아타가며 연주회 장소인 고베의 어떤 산 꼭대기 근처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대기업에서 만들어 운영하는 적당한 크기의 콘서트 장소가 있었다. 하지만 버스에서 마지막으로 내린 직후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들렸던 개 짖는 소리와 언덕을 내려가는 두 대의 차를 발견한 것이 전부다.
마침내 도착한 건물, 팻말을 보니 초대장에 적힌 대로 잘 찾아왔다. 하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망했다. 다 집어치우고 내려가는 길에 올라올 때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공원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는 그곳에 입성한다. 누군가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모양인지 나무와 수풀이 잘 정리되어 있다.
공원에서 ‘나’는 확성기로 울려 퍼지는 듯한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세히 들어보니 그것은 자동차 확성기 방송이었고, ‘크리스천 메시지’였다.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을 찾고, 죄를 회개하고자 하는 모든 자는 용서를 받을 것이요, 지옥의 불구덩이로부터 빠져나올 것이다. 오직 신을 믿는 자만이 구원에 도달하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어리둥절한다. 혹시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한 건가? 아무리 비열한 사람일지라도 이렇게까지 엿을 먹인다고? 그녀와 ‘나’는 특별한 관계도 아니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한 노인이 건너편 벤치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느닷없이 말했다.
“중심이 많은 원”
노인은 반복했다.
“중심이 많은 원”
“몇 개의 중심이 있지, 아니, 때론 무한한 수의 중심이 있고, 둘레는 없는 원이야. 그런 종류의 원을 마음속으로 그려볼 수 있겠나?”
‘나’는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그런 건 안 가르치니까.”
“실제로 존재해요?”
“물론이지,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건 아니지. 너 자신의 힘으로 상상해보렴. 네가 가진 모든 지혜를 사용해서 그것을 그려봐. 많은 중심이 있는 원, 하지만 둘레는 없어. 피를 흘리듯 어마어마한 노력을 쏟으면 점점 그 원의 존재가 분명해질 거야.”
“그래도 너무 어려워요.”
“이 세상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가치 있는 건 없지. 하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어려운 일을 해내면 그건 곧 네 삶의 크림이 되는 거야.”
“크림이요?”
“프랑스에 ‘크림 중의 크림’이라는 표현이 있어. 최고 중의 최고라는 뜻이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가치, 나머지는 진부하고 가치가 없어.”
“생각해 봐,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쭉 생각해보는 거야. 중심이 많은 원, 둘레는 없지. 너의 머리는 어려운 것들을 생각하기 위해 만들어 진거야.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거지. 부지런하고 태만하지 않아야 해.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기야. 너의 머리와 가슴이 만들어지고 단단해지는 시기거든.
‘나’는 어린 친구에게 그날의 그 말도 안 되는 상황과 철학적 메타포와도 같던 노인의 말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느낌은 와. 그날의 그리고 그날의 그 말의 원리(원칙)나 의도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거지.”
“알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나였다면 끝까지 진실을 알고 싶었을 거예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맞아, 물론 그땐 그것이 날 괴롭혔어. 아주 많이. 내게 상처를 주기도 했어.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더군. 화낼만한 일도 아니고. 인생의 크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느꼈어. 이런 일들은 때때로 일어나곤 하지. 우리를 불안케 하는, 설명할 수도 없고 터무니없는 일들 말이야. 내 생각엔 우린 그러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필요가 있어. 그저 눈을 감고 통과하는 거지. 커다란 파도 속을 통과하듯이 말이야.”
전문 서퍼였던 ‘나’의 어린 친구는 ‘파도’와 관련해 생각할 거리가 많은 듯했다.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둘레가 없고, 중심이 많은 원, 그것에 대한 답은 찾으셨어요?”
인생에 있어 이해할 수 없고, 터무니없으며, ‘나’를 괴롭히는 일들이 일어날 때면, ‘나’는 그 원을 마음에 되새겼다. 중심이 많고 둘레가 없는 원.
그 원은 구체적으로 실체가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오직 우리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거나 깊은 연민을 느끼거나 이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 가에 대한 어떤 이상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거나 믿음(또는 믿음에 가까운 어떤 것)을 확인할 때, 그때에야 우리는 그 원을 기정사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의 가슴속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프런트 이미지 출처: Goodrea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