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성실함이라는 것은 증명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말을 아껴도 장기적으로 보자면
글쓰기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스타일이고
스타일은 작가가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입니다.
-레이먼드 챈들러-
스무 살부터 십 년 넘게 '좋은 문장'이라는 것에 강박적으로 매달려 왔다. 이름난 소설가나 수필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정말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렇게 양치기를 하면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을 나름대로 선별하여 머릿속에 칸칸이 정리해둘 수 있어 좋았다. 반면 마음에 와닿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달달 외울 정도로 반복해 읽는 등 하나에 깊이 파고드는 일도 즐겨 했다. 특히 대학 시절에는 남성 잡지의 기사 하나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잘 찍어 사진첩에 저장해 두고 등하굣길의 광역 버스 구석 자리에서 시험 족보를 훔쳐 읽듯 읽었다. '대체 무얼 하려고?' 이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스쳤다면 못 하고 안 했을 미련함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냥' 좋은 문장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진짜 그냥!
생각의 성실함이라는 것은 증명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따로 그럴 필요도 없다고 느낀다. 자기가 절실히 원하는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을 품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학업 수행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반 친구가 하나 있었다. 비록 시험 성적은 늘 좋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영어 과목만은 언제나 진심으로 좋아하며 즐겼다. 어느 날인가 그 친구는 'Moose'라는 영어 단어를 외우기 위함인지 칙칙한 갱지의 뒷면에 그 다섯 알파벳과 그것의 말뜻인 '말코손바닥사슴'을 번갈아 가며 반복해 적고 있었다. 우연히 그 장면을 본 나와 친구들은 깔깔대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그걸 외워서 뭐해?" 그것은 수능에 나오지도 않을 쓸데없는 영어 단어를 뭐하러 외우고 있느냔 참견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것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종류의 말이었다. 우리가 나름의 기준을 세워 그때그때의 작은 목표를 이뤄가며 무언가를 성실히 생각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이유는 단지 그것들을 잘 써먹고 잘 써 먹히기 위함이 아니라 그러한 생각과 행동들이 곧 자기 인생에 소중한 '가치'를 더해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매장을 관리하던 첫 직장을 약 1년 만에 퇴사한 이후로는 그래도 줄곧 '글'을 쓰면서 밥 벌어먹고 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자체 콘텐츠를 만들고 홍보 기사를 작성하며 꼴에 바깥으로 노출하는 크고 작은 모든 '글'을 감독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글'을 써야 할 일이 생기면 직원 모두가 내게 글을 '워싱'해달라고 요청한다. 간혹 내게 '왁싱'을 해달라는 동료들도 있는데, 그것은 사실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일단 거절한다.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역시 적확한 단어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아무튼 나는 '좋은 문장'을 꽤 오래 연구해왔지만 그것이 다만 회사에서 써먹고 써 먹히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나는 '그냥' 좋은 문장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대학 시절에는 광고 회사의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 안달이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다른 길을 택한 게 참 잘한 일 같기도 하다. 나는 무려 직장 동료들의 이런저런 글을 '왁싱'해주는 남자가 되지 않았던가. '참 별꼴이야.'
오늘의 TMI
이 글을 쓰면서 스눕피가 계속 듣고 있던 노래는 'Ty Dolla $ign'의 'Ex(Feat. YG)'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