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 진짜 돌고 돈다면 스탠 스미스와 푸마가 다음일까?
며칠 전에 스타벅스에 혼자 앉아 있는데, 한쪽 테이블에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녀 서너 명이 ‘아디다스 삼바’ 슈즈를 어디서 구할 것인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잔말을 걷어내니 요는 요즘엔 모름지기 ‘삼바’를 최고로 쳐준다는 것이었다.
아, 이 정도구나.
그리고 그날 밤에 샤워를 마치고 나와 잠자기 전의 의식처럼 인스타그램 앱을 켰는데, 돋보기 피드에 아디다스 슈즈를 신은 소위 성수 피플이 정방형의 퍼즐 위에 잔뜩 진을 치고 앉아 각자의 개성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다 멋지구나.
아디다스 삼바의 도시적 인기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내 취미 활동을 즉각 가동했다. 조영남 작곡, 김한길 작사, 불후의 명곡 <화개장터>처럼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답니다, 구글 검색!
삼바는 본래 땅땅하게 얼어붙은 경기장 위에서도 축구 선수들이 잘 뛰어다닐 수 있도록 설계된 기능성 트레이닝슈즈였다. 더욱이 아디다스의 창립자 아돌프 다슬러가 군중 속에서 자기 신발을 더 잘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슥슥 그은 삼선 화이트 페인팅, 그것의 상표권 등록을 마친 1949년 3월 이후 그것을 가미해 곧바로 나온 슈즈라서 더 의미 깊다. 그렇다. 반복하건대 삼선의 탄생 목적은 다른 운동화로부터 '돋보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대중 패션의 3요소는 역시 코튼 티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스니커즈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대부분 기능성에서 출발해 라이프스타일로 녹아난 것이다. 이유가 뭘까.
어렵고 복잡한 분석은 내 깜냥이 받쳐주질 않기에 우선 내 머릿속의 단순한 생각을 내어놓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 편하기 때문에, 둘째, 자기 능력껏 브랜드 값을 지불한 만큼 자기를 차별화할 수 있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앞선 두 가지 이유를 토대로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주 혹은 쉽게 유행하기 좋은 일상의 소재인 것이다.
아디다스 삼바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아디다스 삼바 열풍이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빚어진 적이 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 초반까지의 영국에서였다. 더 자세히 말하면 항구 도시 리버풀의 청춘들의 발끝에서 시작된 흐름이었다. 당시 리버풀 축구팀의 광팬들은 다른 팀, 다른 나라 팬들과 자신들을 차별화하기 위해 공통의 드레스 코드를 암묵적으로 공유했다. 지역과 나라를 옮겨가며 한 몸으로 난리를 치며 뭐든 박살내고 깨부수던 그들의 천편일률적인 패션은 그렇게 곧 새로운 서브 컬처 패션 트렌드가 된다.
그들은 스트레이트 진과 코듀로이 진, 아노락(윈드 브레이커)과 가디건을 즐겨 입었고, 화룡정점의 개념으로다가 아디다스 삼바 슈즈를 신었다. 리버풀의 상대팀 광팬들은 MA-1이나 닥터 마틴 부츠 등으로 여전히 호전적인 감도를 표출하고 있던 때였다.
아무튼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무자비한 태도로 철 박힌 클로그나 킥커 부츠, 바닥을 질질 끄는 통 큰 바지와 레더 벨트로 무장했던 영국 골목길의 청소년들도 그들(리버풀 팬)의 압도적인 흐름에 휩쓸려 패션을 갈아탔다. 사실 경찰이 쫓아올 때면 역시 기동성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새로운 기능성의 추구이자 아디다스 삼바 열풍의 어쩔 도리가 없는 시작점이었다. 이렇듯 서브 컬처 패션 아이템은 무엇보다 기능성에 충실하였다는 걸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자. 성수에 가까이 살아서 그런지 나는 그곳에 자주 들르는 편이다. 딱히 약속이 없거나 할 일이 없을 때에도 거기로 산책을 간다. 그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사람 구경을 즐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패션을 슥슥 본다.
멋지고 아름다운 패피 여성 분들의 아디다스 삼바 행렬 그리고 흩날리는 플릭 헤어스타일, Y2K 팝 펑크 스타일의 재림을 목도하며 수많은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패션은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빙빙 돌아온 우리의 시간처럼 돌고 도는 과학에 가깝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앞서 기능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나는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우리 언론이 제일 좋아하는 MZ세대, MZ 특이 무엇인가 하면 편하고 쿨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건 나와 내 친구들 그리고 형, 누나, 동생들을 꾸준히 관찰하며 쌓은 경험칙이다. 뭐 내가 편한 거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그들이 파충류 같다는 건 아니고, 실용적이고 편한 것을 골라 즐기되 짜치는 느낌이 아니라 은근히 풍기는 멋스러움을 취할 줄 알고 또 드러낼 줄 아는 쿨한 감각을 소유한 세대란 말이다.
허황하게 물질적인 것만을 좇으며 골프에 빠지고, 럭셔리 브랜드에 푹 빠진 정신 못 차리는 MZ 세대, 이런 되지도 않는 이야기는 듣기도 거북하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어서 제발 그만 보고 싶다.
조회수를 얻되 신뢰를 잃는 MZ 분석론, 차라리 아디다스 삼바 열풍에서 MZ 특을 찾는 개성적인 언론을 나는 보고 싶은 것이다.
나는 배움도 깜냥도 부족해서 이 정도로 마무리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당시의 리버풀 팬들이 아디다스 삼바 다음으로 선택한 슈즈는 아디다스 불멸의 테니스화 스탠 스미스와 푸마의 트레이너였다. 그러고 보니 마침 대한민국의 길거리를 장악하다가 종적을 감춘 지 오래인 친구들이기도 하다.
자, 역사가 보증하는 눈치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넥스트 슈즈 트렌드에 과연 누가 먼저 가장 빠르게 올라탈 것인가? 필자는 눈치나 살살 보다가 조용히 푸마 트레이너 풀매수 완료, 참고로 저는 반등의 조짐 없이 끊임없이 하락하는 시세 파괴의 주범이니까 다들 조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