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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Oct 10. 2022

역시 힙합은 꼰대가 불러야 돼.

역힙꼰의 프린스, 르자를 듣고도 힙합이 안 멋져?



내가 본격적으로 미국 힙합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게 내가 중학교 1학년생이었던 2003년 무렵인데, 그때 즐겨 듣던 노래들이 거진 동부 힙합이었다.


어디서 어떤 포인트로 어떻게 감동해야 하는지 감 잡기 어려운 단조롭고 육중한 90년대 동부 힙합 비트를 이제 막 미힙에 입문한 선생님이나 한힙 마니아 분들께 추천하는 건 사실 이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블로그에서 최소 10번 이상 언급한 앨범, 시험에 나온다는 말.




설령 미힙깨나 들었다는 선생님이라고 해도 당신들이 엄청 뽀득뽀득하고 세련된 서부 힙합이나 되게 신나고 들뜨는 남부 힙합의 메인 카탈로그로 힙합의 귀를 튼 축에 속한다면 동부 힙합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따로 또 적지 않은 적응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반면 나는 우탱 클랜의 <Enter the Wu-Tang: 36 Chambers>와 맙 딥의 <The Infamous>와 같은 앨범을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라고 산포시의 구씨 받들듯이 추앙하며 사춘기를 보내서 그런지 하루에 동부 힙합 앨범 몇 바퀴 돌리며 소화하는 것이 그렇게 부대끼는 일은 아니다. 이걸 뭐 자랑이라고;;;




'Survival of the Fittest'나 'Cradle to the Grave'와 같은 곡은 중학 시절의 내게 종교 그 이상이었다.




요즘엔 동부 힙합의 지존, 우리 우탱 삼촌들의 옛 솔로 앨범이 무지 땡겨서 복습하고 있다.


신보 더미에 밀려 잊히거나 아무래도 평평하고 잔잔한 노래가 조금 더 좋은 나이라서 자연스레 멀어졌던 빡센 노래들과 재회하는 기쁨이 있기에 힙합 덕질에는 끝이 없다. 그리고 역힙꼰의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다.


역시 힙합은 꼰대가 불러야 돼.




의미심장한 앨범 타이틀과 커버 사진





고로 이번 연휴에는 우탱의 리더 RZA 삼촌의 솔로 3집 앨범 <Birth of a Prince>(2003)를 계속 돌렸다.


다소 산만하고 난해하지만 뚝심 있게 자기 스타일을 들이미는 힙합 천재의 음악 실험실에 잠입하여 60분 동안 펼치는 구)힙합 지존이자 현)힙합 꼰대의 생쇼를 훔쳐보는 느낌. 다신 재현할 수 없는 어린 날의 미친 크리에이티브 선물에 고마워할 줄은 모르고 배만 불러 일해라 절해라 하는 리스너들의 팔짱을 풀게 하는 일의 지난함은 생각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랄까잉(바랐을까잉)!




리한나 누나가 스피릿 티셔츠로 선택한 르자의 머천다이즈, 와이 프로젝트의 따이 하이 부츠도 인상적이다.




연휴의 끝을 잡고 있는 나의 사랑이 더 이상 초라하지 않게 나를 위해 울지 마 난 괜찮아, 연휴가 끝났어도 괜찮은 대범한 남자 스눕피의 미국 힙합 음악 추천, 오늘의 추천 곡은 르자의 앨범 <Birth of a Prince>가 품은 가장 말랑하며 소울풀한 곡 'Grits'입니다.




When I was small
We had nothing at all
We used to eat Grits
For dinner



지독하게 가난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랩을 터는 우탱의 두 멤버, 르자와 마스타 킬라.


그들은 뉴욕의 코딱지만 한 정부 보조 아파트에서 8명의 아이들이 엉켜 앉아 TV 만화를 보다가 "밥들 먹어!"라는 엄마의 부름에 참새처럼 모여 앉아 설탕과 마가린을 함께 넣어 만든 퀘이커 오츠 사의 식사 대용 인스턴트 푸드 'GRITS'와 함께 모닝 스타 팜즈 사의 베지 베이컨을 곁들여 게걸스럽게 처먹던 시절을 회상한다.




Pilgrim on the box
on the stove in the kitchen

-퀘이커 오츠 필그림좌-




두 힙합 레전드를 만든 우탱 푸드 조합, 다음에 먹어봐야지.




또 다른 하루를 그저 살아내기 위해 저녁 식사로까지 퀘이커 오츠 사의 그리츠를 처먹어야만 했다던 그들이 말하는 Grit은 사실 자기 계발 베스트셀러 <그릿>의 작가가 이르듯 '열정적인 끈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밑바닥 체험의 자산화, '끈기'라는 힙합 스코어 말이다.


요즘 글 많이 쓰죠?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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