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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Oct 22. 2022

스케이트 보더와 와이드 팬츠

스눕피의 와이드 팬츠 단상, 그 세 번째 이야기



시답잖음 경고


오늘은 스눕피의 (시답잖은) 와이드 팬츠 열풍 단상, 무려 그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내용도 짧으니까 홈런볼 하나 까먹는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주세요. 2편에서는 레이버(Raver)의 레이브 팬츠와 엮었더랬죠. 오늘은 90년대 스케이트 보더들의 패션을 가져와 억지로 꿰어보겠습니다.






90년대 중후반의 미국에서 하위문화 패션의 라이벌은 단상 2편에서 소개했던 ‘레이버 스타일’ 그리고 오늘 소개할 ‘스케이트 보더 스타일’이었습니다.







속물적인 패션


90년대 스케이트 보더의 패션은 다소 속물적이었습니다. 여유 있는 집에서 태어나 철이 덜 든 X세대 화이트 청소년의 비릿한 감성, MTV 힙합과 랩을 동경하지만 자신들의 방식대로 그것의 느낌을 재해석하는 본능적인 명석함, 지나치게 커머셜한 패션 브랜드 따위 비웃으며 지양하는 곤조, 그러면서도 거친 풍파를 견뎌낼 견고한 품질의 소재를 찾아 헤매는 깐깐함까지. 그래서 한 달에 신발 서너 켤레를 작살내고 또 새 신을 찾아 헤매던 그들을 스니커 헤드의 효시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능보다는 패션을 먼저 생각한다는 말이 통했던 간지 우선주의의 신봉자들이기도 했죠.







하나의 기조처럼


무례하지만 유머가 있고, 대조적인 차이로 인해 개성적이며(위아래 아래위에 브랜드의 체급 차이를 두는 습관 때문에), 스타일 아이디어로 승부를 겨루고(허벅지까지 차오르려는 니 하이 튜브 삭스와 멘틀까지 달라붙으려는 검솔 스니커즈의 극적인 대비는 촌스럽고 우스운 미국 중년 투어리스트 패션이 아니라 간지의 끝이라는 것), 기성에 대한 대안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발악하던 90년대 스케이트 보더들의 패션 스타일, 그것의 핵심 강점은 역시 ‘믹스'였습니다.


그들은 힙합 음악을 들으며 배기팬츠를 입었고, 그라피티를 품은 박시한 티셔츠를 입었으며, 모로 볼캡을 얹거나 비니를 무심하게 눌러썼습니다. 거기에 여미지 않은 플란넬 셔츠와 워크 팬츠 등의 스케이트 보더 유니폼을 슬기롭게 섞어 입었죠.







화이트가 좀 묻어야



미국에서 힙합이 돈이 되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그들(흑인)만의 리그 속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백인’ 청소년들이 빨려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운동회를 열어도 코딱지만 한 운동장에서는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기본값처럼 스케이트 보드를 즐기던 중산층 백인 청소년들의 코 묻은 돈을 빨아들인 건 당연히 힙합뿐이 아니었고 현재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스트리트 웨어’의 본보기가 된 1세대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X-LARGE



스트리트 패션 1세대


1991년 설립한 웨스트코스트 스트리트 브랜드 ‘X-LARGE’가 아주 대표적이었죠. 구하기 어려운 스포츠 브랜드의 데드스톡 스니커즈를 큐레이팅하고 무지 티셔츠에 크고 작은 로고를 입혀 작은 컬렉션을 구성하던 감성 편집샵과 같은 시작점으로부터 훗날 스케이트 보드 씬과 합동해 그들의 핵심 테마인 다채로운 프린팅과 함께 바지, 모자, 아우터, 액세서리까지 그 라인을 확장하게 되는 브랜드 엑스라지는 비스티 보이즈, 아이스큐브 등의 힙합 스타를 꾸며주는 아이코닉한 패션 브랜드로 이름을 날립니다(비스티 보이즈의 멤버 Mike D는 엑스라지의 파운더 중 한 명이기도 함). 그리고 우리의 백인 청소년들이 환장을 하며 가담해 판은 매우 커졌습니다. 한편 94년의 반대편 뉴욕에서는 슈프림 스토어가 그랜드 오픈을 때립니다. 전설의 레전드가 시작된 것이죠.







노상 관심 없는 내 얘기


과거 얘기를 부산스럽게 늘어놓았으니 이제 현재를 잇대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안 그러면 글이 산으로 갈 거 같아서 무서워요.


20년 전에 비해 최저 시급은 4배쯤 올랐는데, 물가는 몇 배가 올랐는지 감이 잘 안 잡힙니다(제가 수학을 잘 못해서). 관심도 없으시겠지만 잠깐 제 얘기를 하자면 저는 옷을 워낙 좋아해서 옷을 자주 사는데, 제가 월에 버는 돈으로 월에 옷에 쓰는 돈을 나눠보면 제정신이 박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 같아서 참담하고 한심한 감정이 들곤 합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합리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세컨 핸즈 패션에 빠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각설하고 서른셋을 까먹은 저보다 어린 10대 중반부터 20대 중반을 통과하고 계신 분들 중에 패션에 관심이 있는 선생님들이라면 저보다 더 절실하시겠죠. 보여주기 식 삶에 굴복하지 않겠다면서 모른 체하기엔 도처에 잘나 보이는 것들 투성이고 ‘관심’이 돈을 벌어다 주는 작금의 현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도 몇 안 될 겁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노력을 하게 됩니다.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딱 멈추고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 젊으니까요. 그래서 있는 힘껏 소란스럽게 돋보이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펄럭거리며 바닥을 쓸고 다니는 와이드 팬츠는 개중 최고이고요.







교훈이라기엔 현실


앞서 언급한 스케이트 보더들의 패션 철학 중에서 요즘 세대의 패션 철학을 고스란히 담은 것들이 좀 있어요. 예컨대 돈을 처바르기보다는 스타일 아이디어로 승부를 겨루려는 자세라든가 위아래 아래위에 브랜드 체급 차이를 두어 개성을 만드는 행위(결국 합리적인 소비로 연결될 수 있겠죠) 그리고 견고한 품질을 찾아 헤매는 깐깐함 같은 태도 말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것의 매력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재료는 팬츠, 특히, 와이드 팬츠라고 생각합니다.




Kids(1995)




사실 제가 와이드 팬츠 열풍에 집착하는 것은 패션의 미래를 과거에서 찾는 것이 너무나 흥미롭기 때문인데, 그 시각적인 변화의 바람이 가장 빠르고 크게 훅 끼쳐오는 것이 펄럭거리는 바지라서 그렇습니다. 관련하여 생각은 많은데 예쁘게 잘 정리는 되지 않고 여러 가지 사례들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닙니다. 처음부터 시답잖은 글이라고 밑밥을 깔았던 건 그래서입니다. 아무튼 또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4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대강 쓰고 또 대강 쓰고, 그렇게 한 10편 쓰고 그것들을 하나로 묶으면 재밌는 글이 새로이 나올 것도 같습니다. 기대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쓴 아래의 추천 글도 한 번씩 읽어봐 주세요. 그러면 너무 고맙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오늘의 추천곡]

오늘은 조금 하드코어하게 가볼까요? 아이스 큐브 성님의 'The Ni**a Ya Love To Hate'입니다. 빡센 주말 보내세요!




[함께 읽으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0to1hunnit/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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