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눕피 Mar 07. 2024

브리티시 자메이칸 패션의 힘

윈드러시 & 마틴 로즈, 웨일즈 보너, 비앙카 선더스



기분 좋은 착취


마틴 로즈, 웨일즈 보너, 비앙카 선더스는 내게 보이스피싱 또는 자동 이체 같은 패션 브랜드다.



마을 친구들을 초대하여 춤추고 즐기고, 의식하고 뽐내고, 환호하고 열광하는 댄스 플로어의 에너지를 담은 마틴 로즈의 24FW 컬렉션 - 최신 남성 패션 트렌드의 바이블과도 같다.



특이점이 있다면, 내가 나를 스스로 낚시한다는 것이고, 자동 이체 요금의 대가가 순전히 미용 목적이라는 것이다. 쩝.



미국의 복잡성과 모순을 탐구, 인종 차별 경험과 실존 위기를 비판한 64년작 <nothing personal>로부터 영감 받은, 비앙카 선더스의 24FW 동명 컬렉션



온라인 쇼핑을 즐기던 중에도 무심코 스크롤을 내리다 손걸음을 툭 멈추게 하는 ‘렉’ 같은 매력, 아니, 거진 마력을 지닌 락킹한 패션 브랜드들, 안 질리고 꾸준히 좋으니 어쩌면 좋을까.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하버드로 불리는 하워드 대학의 문학 유산과 졸업 앨범 및 90년대 아카이브로부터의 영감과 힙합 문화를 연결한 웨일즈 보너의 24FW 컬렉션



공통분모


세 디자이너의 눈에 띄는 공통점은 역시 남성복 짓기에 특화한 여성 패션 디자이너라는 분명한 캐릭터와 브리티시 자메이칸 혈통이라는 유전자가 아닐까 싶은데, 참신한 크리에이티브의 공통 비밀 또한 어딘가에 숨어있지 않을까 싶어 괜히 더 호기심이 생긴다. 쩝.



Jamaica


카리브해의 섬나라 자메이카는 무려 300년 넘게 영국의 식민지였다. 따라서 20세기 초부터 영국 내에는 이미 자메이카 커뮤니티가 비교적 잘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메이칸의 본격적인 영국 이주 바람이 분 건 20세기 중반이었다.



euronews.com



오세요, 영국!


1948년, 영국 국적법은 식민지인들에게 영국에서 거주하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특히, 일자리 약속은 이주의 가장 큰 요인이 됐다. 전후 영국은 극심한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고, 자메이카는 1944년의 허리케인 강타 이후 경제 손실이 컸다. 그래서 자메이카의 숙련 노동자와 고급 인력 일부는 생활 수준의 향상을 꿈꾸며 영국행을 결정했다.



metro.co.uk



WINDRUSH


1948년 6월 21일,


자메이카, 버뮤다, 트리니다드 등지로부터 천 명 이상의 사람들을 실은 <HMT 엠파이어 윈드러시>호가 영국에 도착,


다음날 공식 하선하는데,


이는 카리브해 이민자 본격 이주의 시작점으로 간주된다.



윈드러시호는 독일에서 최초 건조돼, 나치 승인 휴일에 독일 여행객을 유럽과 남미로 데려가던 유람선이었다. 1950년에는 영국군을 한국으로 옮기는 병력 수송선으로도 활용됐다.




한계와 분투


하지만 그들은 엄혹한 차별과 한계에 부딪혔고, 대부분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의 일자리를 수락했다. 희망과 낙담의 교차, 디아스포라의 분투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랑했고, 이민 3, 4세대로 접어드는 커뮤니티의 토대를 만들었다.




museumoflondon.org.uk



스타일로 존재하기


한편 자유와 행복을 바라던 그들의 입지 열망과 고향에 대한 향수는 존재감의 과시로 투명하게 드러났고, 그것은 곧 실용 이상의 스타일로 표출됐다.


볼드한 컬러 의상, 휘황찬란한 패턴 타이, 고향의 맛 다시, 아니, 액세서리, 강렬한 향수와 같은 고유의 인종적, 문화적 감각으로부터 이끌어진 결과물들 말이다.



museumoflondon.org.uk



하이브리드 믹스


나아가 그것들은 환경의 변화에 맞게 지배적 문화의 룰 아래에서 새롭게 재구성되고 섞였는데, 이러한 융합 패션에 대해 어떤 전문가는 사회적 ‘인정’을 위한 미션을 부여받았기 때문이었을 거라며 다소 슬픈 관점의 해석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식민 통치 혹은 이주 전후 패션의 변화에는 역시 잡종인 상태라든가 중간적인 태도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특히나 애초에 단벌 신사에 가깝던 영국 남자들에게 스타일링 방법이나 컬러 셔츠 같은 패션 아이템의 존재를 일깨워준 건 사실 자메이카를 포함한 서인도 연방의 자치 식민 국가 이민자들이었다는 역사적 관점 또한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구글링에는 끝이 없다.




Martine Rose


우리의 위대한 패션 디자이너 마틴 로즈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언제나 패션보다는 ‘옷’에 더 관심이 있었다면서,


특히, 자메이칸 커뮤니티(아버지 세대)의 패션 접근법과 스타일에 큰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Martine Rose / apartamentomagazine.com



자메이칸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스타일이 정말 중요했어요.

자메이카인들은 패션의 개념은 비웃지만,

스타일을 갖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분명 타고나는 것이 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조합의 방식 말이죠.

그건 정말이지 태도였고,

저에게 영감을 줬어요.

- <NEU NEU MEDIA> '마틴 로즈' 인터뷰 중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여성 포토그래퍼 'Beth Lesser'는 그녀의 남편과 함께 자메이카 킹스턴과 미국 뉴욕을 여행하며 80년대 레게 씬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활착했다.



Wales Bonner


브리티시 자메이칸 유산의 이중성 및 디아스포라적 탐구를 꾸준히 실천하며 다채로운 문학적 영감을 매력적으로 리믹스하는 천부적인 디자이너 그레이스 웨일즈 보너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블랙 디아스포라'가 자신에게 끝없는 영감을 줬다고 말하면서, '편집'은 'Wales Bonner'가 하는 일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그것이 브랜드의 스토리를 만든다고 밝혔다.



Grace Wales Bonner




Bianca Saunders


판타지가 느껴지는 멋진 남성 테일러링을 선보이는 신흥 패션 디자이너 '비앙카 선더스' 또한 영국과 자메이카의 혼합 요소에 대한 오랜 관심 그리고 가족, 친구, 공동체로부터의 영감을 기반으로 디자인 작업을 이어간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Bianca Saunders / istitutomarangoni.com



Foundation


정리하자면 앞선 모든 스토리는 결국 <뿌리를 타고 내려가는 일의 힘과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러니 내친김에 분위기를 살짝 개똥철학 쪽으로 끌고 가면서 오늘의 글을 마무리 지어 보자면,


우리는 우리 감각 이상의 세상을 이해할 수 없고,


자기 생각을 구성하는 일 또한 나의 경험과 상상의 범위를 넘어설 수 없기에,


결국 자기가 비롯된 곳을 잊지 않는 충성심


그리고 자기 뿌리에 대한 인정과 긍정 그리고 축복만이 최고 버전의 나를 끌어내,


최선의 예술을 만드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무튼 크게 크게 보면 인생에 속임수란 딱히 없는 것 같다.



[함께 읽으면 좋은 포스트]

https://brunch.co.kr/@0to1hunnit/341


[함께 들으면 어쩌면 좋을 노래]

디제이 프리모 삼촌이 프로듀싱한 4번 트랙 'Mathematics'의 경우, 야신 베이 삼촌이 웨일즈 보너의 24FW 무대에 직접 등판해 라이브로 시원하게 불러주셨다.


이전 06화 러플과 레이스를 품은 남성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