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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온 편지가 있나요?

Please Mister Postman – Look and See

by 스눕피



십프피의 음악 에세이


“잠깐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우체부 아저씨! 가방 속에 제게 온 편지가 있나요?

제발 부탁인데요, 확인 좀 해주세요.

남자친구 소식을 들은 지 너무 오래된 걸요. 며칠이고 제 앞을 그냥 지나치셨잖아요. 제가 눈물 흘리는 거 보셨으면서, 위로도 안 해주시고.

아, 잠깐! 제발요, 아저씨,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안 돼요?

딱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해 주세요. 제발요!”


1961년 8월,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외곽, 잉크스터 출신의 흑인 시골 소녀들이 발표한 노래 한 곡은, 이후 현대 팝과 소울 뮤직의 밑바탕이 된다.



학교 장기자랑 차 결성된 소녀 그룹은 선생님의 도움으로 모타운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고, 촌스러운 첫인상과 달리 반전 매력 가득한 실력을 뽐내는 소녀들에게 모타운 팀은 매력을 느낀다. 색다른 오리지널 송을 갈구하던 그들이 소녀들의 자작곡에 제대로 휘감긴 것이다.



곧이어 본격 녹음이 시작되고, 자작곡의 리듬 섹션은 피아노,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됐는데, 특히, 당시 모타운 스튜디오에서 세션 드러머로 활동하던 ‘마빈 게이’가 드럼을 연주했다. 데뷔 앨범의 상업 실패 이후 녹음실에서 드럼이나 두드리던 유명 게이의 이름은 마빈이었다.


드럼 때리는 게이!


전쟁터로 떠난 남자친구를 그리워하며, 편지 한 통, 엽서 한 개, 아니, 쪽지 하나, 아니, 그저 단 한 줄의 안부 메시지를 기다리는 애달프고 애타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


The Marvelettes 마블레츠의 <Please Mr. Postman>.


비틀즈(1963)와 카펜터즈(1975)의 커버곡과 함께 더 널리 알려졌다.


해군에 입대한 남자친구로부터 편지가 오길 기다리며 하염없이 창가를 서성이던 그룹의 멤버 Georgia Dobbins의 직접 경험이 빚어낸 해당 데뷔 싱글은 모타운 레코드 산하의 Tamla 레이블에서 발표됐고, 모타운 설립 이래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 자리에 오른 곡이 되었으며, 모타운 팝 대중 점령의 신호탄이 되었다.


“모든 일이 너무 빨리 벌어졌어요.

장기자랑, 녹음, 발매, 그리고 빌보드 1위까지,

1961년 한 해에 벌어진 일이죠.”



한편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베트남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하고, 남자들의 징집이 시작되던 시기에 소녀들의 간절한 외침은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가 됐고(이후 수년간, 팝 음악은 베트남 전쟁의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여전히 인종 분리의 그늘 아래 있던 미국 사회에 10대 흑인 소녀들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전국에 퍼뜨리는 계기가 된다. 흑인들이 음반 커버에 얼굴을 올릴 수 없어 우체부 그림만 그려 넣던 슬픈 시절이었다.


The New York Times


백인 초등학교에 흑인 아동이 처음으로 통합된 이듬해(1961년)에 데뷔해 <Black is Beautiful> 운동이 거세게 일던 1960년대에 활동한 The Marvelettes는 시절의 끝(1969년)에서 해체했다.



그리고 시간이 훌쩍 흘러 2025년 우리의 이야기.


닿을 수 ‘없는’ 게 없어 아쉬울 틈도 없는 연결 과잉의 시대. 기다릴 줄도, 기다릴 필요도, 기다릴 이유도 없는 복 받은 세대.


게임 카드 고르듯 사람을 선택하면 그만일 뿐인 아니면 말고 식 연애와 사랑이 만연하고, 쌩 하고 지나치는 집배원 아저씨 때문에 가슴이 철렁 무너지거나 세상이 온통 까매지는 그런 간절함의 경험이 없으니 소중함의 감각은 절멸 직전이다.


낭비와 비교해야만 비로소 낭만의 개념을 깨닫는 정서적 아둔함이 공감으로 통하는 사회에서, 절실한 마음을 실어 나르는 나만의 집배원 아저씨는 온데간데없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고 진실되게 기다리는 사랑의 마음은 결코 하찮거나 쿨하지 못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낭만 하나는 뒤졌던 그때 노래를 듣다가 모든 낭만이 얼어 뒤진 요즘 세상에서 퍼뜩 깨닫는다.


때론 절절하게 안타까운, 나도 모르게 발뒤꿈치를 세우는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움이란 게 분명 존재할 테니까.


어쩌면 지지리도 철없는 나의 민망스러운 바람일지도 모르겠다만.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So many days you passed me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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