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반숙 삶기와 SZA의 Snooze
언제부턴가 아침에 눈을 떠 습관처럼 아이폰 화면을 터치하면 단축어 알림이 활성화된다.
알림 센터의 알림을 따라가면 시계 앱의 타이머 기능으로 연결되고, 타이머는 내게 8분 30초란 애매한 시간을 추천해 준다.
그것은 사싵 나의 모닝 루틴 중 하나인 계란 삶기의 적정 시간인데, 매일 같이 그 짓을 반복하니 이젠 아이폰이 알아서 척척 기상 직후의 내 뻔한 행동을 제안해주려는 모양이다.
더럽게 못생기고 낡아빠진 양은 냄비에 수돗물을 가득 담아 인덕션 화구 위에 올리고, 불의 세기를 디지털 숫자 10으로 맞춘다.
잠시 후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계란 두 알을 국자에 담아 끓는 물속으로 조심스럽게 투하한다.
그리고 아이폰의 타이머 기능을 설정하여 8분 30초 동안 기다린다.
시간이 흘러 타이머가 요란하게 울리면 끓는 물을 잽싸게 버리고, 껍질이 쉽게 벗겨지도록 계란 위로 찬물을 계속 끼얹는다.
그러면 두 알의 맛있는 반숙란이 완성된다.
짜잔!
아주 가끔 나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가끔의 또 아주 가끔, 나는 죽어도 깨어나고 싶지 않은 기분 좋은 꿈을 꾼다.
그럴 때면 현실에선 쉽게 느껴볼 수 없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이 유쾌하고 설레는 감정을 마냥 유예하고 싶어서 나는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다.
영원한 재미를 찾는 어린아이처럼, 절대적 본능에 충실한 도마뱀처럼 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눈을 뜨면 세상은 분주한 아침일 뿐이고, 당면한 현실에 적용할 Snooze 버튼은 없다.
세상은 아이폰 속이 아니니까.
아쉬움을 삼키고 안달을 감추는 건 어른이 되어도 못할 짓이다.
냉정한 소리는 하기 싫지만, 꿈은 어서 깨라고 있는 것이니까.
다시 계란 이야기.
비몽사몽, 아무 노래나 몇 곡 듣고 있으면 8분 30초가 금세 흐르고, 반숙이 완숙이 될까 두려운 나는 두 알에게 급히 찬물 샤워를 시킨다. 잘 아시겠지만, 그래야 껍데기도 더 잘 까지는 법이다.
드디어 완성된 매끈하고 부드러운 반숙란 두 알은 나의 빈속을 달래는 훌륭한 아침 식사가 되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라는 걸 알려주는 살아있는 교보재가 된다.
냉장고 문을 열고 덩그러니 놓인 애호박 하나를 바라보며 코를 찡긋할 것 같다며 애꿎게 놀림 받은 어떤 배우처럼 나는 오늘 계란 두 알로부터 인생을 배운다.
운명의 시간이 준비된 자를 비껴갈 리 없고, 최고의 경사는 기다리는 이를 외면할 수 없으며, 완벽한 때를 놓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러한 교훈을 전문 용어로 (순진한) 희망 회로라 부른다는 것을 말이다.
I can't lose
when I'm with you.
How can I snooze
and miss the moment?
한편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SZA 시저는 지금 이 사랑,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하고 조급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다른 의미로서의 Snooze를 노래했다.
“네가 날 생각해주기만 한다면,
널 위해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사람도 죽이지.)
근데 왜 넌 날 떠나려고 해?
거짓말한 건 너인데,
왜 자꾸 내 탓을 하는 거야?
떠나려는 건 너인데,
울고 있는 건 나잖아?
난 그저 너의 전부가
되고 싶었을 뿐이야.
너와 함께 있어야만
나는 무너지지 않아.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흘려보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어.”
당장 꺼버릴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붙잡고 싶은 마음.
정말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바로 끊어낼 수 없는 이야기.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결코 무심할 수 없는 상태.
소중한 순간을 놓치고,
잠잠할 수 없는 기분.
내면의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용기 있게 정면 돌파하는 것.
그것이 언뜻 짜치는 집착처럼 비칠지라도.
SZA가 말하려던 진짜 사랑이란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코 찡긋)
우리 인생에도 Snooze 버튼이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건 꿈속에나 있겠지.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https://youtu.be/LDY_XyxBu8A?si=TIGxjzjQEN4yxhE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