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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연습 Jan 09. 2022

불편함을 감수하는 소설

#35. 서른다섯 번째 책) 김 호연, <불편한 편의점>


이 소설은 우리 주변의 너무도 보편적인 불편함들로부터 만들어진 소설이고,

그 불편함을 감수하는 소설입니다.

서른다섯 번째 책, <불편한 편의점>, 김 호연, 한국, 2021.






아니, 손님한테 불편을 줬으면
해결을 해줘야 할 거 아냐?
여기 편의점 아냐? 그래 안 그래?
-61p



아마도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하나를 꼽는다면 '불편한'이라는 형용사일 것이다. 얼핏 세어 봐도 대략 스무 번 가까이 나온다. 몇 가지를 옮겨 보자.


그런 와중에 한우라니, 비싼 집으로 소문난 이곳을 엄마의 생일이라고, 장모의 생일이라고 이렇게 모시다니……. (…) 불편한 마음으로 앉아 있던 염 여사는 손녀 준희를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26p
오늘은 또 뭔 진상을 부리려나……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차올랐다.
-43p
편의점에 가기 위해 점퍼를 걸치며 존재 자체가 불편한 덩치 큰 사내를 떠올렸다.
-105p


이 외에도 많다. 그저 제목에서 '불편한'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세어 본 것에 불과했는데, 사실 이렇게 많이 나올 줄은 몰랐다. 너무 비싼 한우 전문점이 부담스러워 '불편'하고, 진상 손님의 비상식적인 언행이 '불편'하고, 또는 동료 아르바이트생의 위악적인 몸집이 '불편'하고… 여기서 내가 새삼 놀란 것은 형용사 '불편한'이 거의 모든 말 앞에 붙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는데, 심지어는 '편의'라는 말 앞에도 붙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불편한 편의점>이란, 참 잘 지은 제목이 아닌가 생각했다.

어쨌든 '불편한'이란 단어를 남용하는 인물들이 그 불편함을 토대로 이 작품을 구성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 소설에는, 그동안 모르고 살았거나 알고도 모른 척하던 '불편함'과 끝내 대면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화의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결국 등을 돌리고 살게 된 한 모자(母子)의 불편한 관계, 알코올 중독에 빠져가는 한 가장의 외롭고 불편한 마음, 등등. 그러나 이 소설에서 이들의 불편함은 단순히 불편함이기만 하지 않고 '해결되어야 할 무엇'이며, 병에 걸린 이들이 병원을 찾듯, 이 소설 속 편의점이 그들의 불편함을 해결(치료) 한다. 그러니 이 소설은 우리 주변의 너무도 보편적인 불편함들로부터 만들어진 소설이고, 더 나아가 그 불편함과 싸우는 소설이다.

그렇다면 184면에 등장하는 편의점 사장의 대사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마스크가 불편하다 코로나에 이거저거 다 불편하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떠들잖아. 근데 세상이 원래 그래. 사는 건 불편한 거야.
-184p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며 사는 건 당연히 불편한 것,이라는 말은 뻔하고 오래된 말이다. 하지만 이 대사가 작중 편의점 사장에게서, 그 선량하고 성실한 완전무결의 인물에게서 튀어나온 대사라는 점만은 다소 독특하다. 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선한 이조차 삶을 '불편함'의 일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뜻일까.

그러니 내가 위에서 말했듯, 이 소설이 '불편함과 싸우는 소설'이라는 말은 어쩌면 잘못됐다.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소설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소설이다.



*이 글은 밀리의 서재로부터 지원받아 쓰였습니다.





01.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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