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마흔여덟 번째 책)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산문(散文)은 한자로 '흩을 산(散)'자를 쓰고 있지만 실은 모든 좋은 산문은 '흩어짐'과 거리가 멀다. 물론 그 散 자가 외형적 규범과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운 글이라는 의미임을 모르지 않지만, 혹자는 그 자유로움을 글의 내용에까지 적용하여 산문집이란 일관된 주제가 없고 생각나는 대로 아무 이야기나 쓴 글을 모아 둔 것이라고 오해할지도 몰라 굳이 이렇게 적어 본다. 지금은 돌아가신 황현산 선생의 첫 번째 산문집은 '흩어진 글'이 아니고 대단히 '집약된 글'이다. 형식상에서 자유로울지 몰라도 내용상에서는 염결하게 구속되어 있다. 어떤 구속을? 뒤늦게 이 글들을 읽은 한 독자의 눈에는 그것이 윤리에의 구속으로 보였다. 평생을 문학 연구에 바친 자가 꿈꾸는 윤리적인 사람, 윤리적인 말, 윤리적인 세상, -그 윤리적인 꿈들이 이 산문들을 아름답게 구속하고 있었다. 선생이 수십 번 고민 끝에 겨우 한 줄씩 써 내려갔을 이 문장들을 읽으며, 나는 그의 수사학적 고뇌보다는 윤리적 고뇌를 읽었다. 이 글들을 쓰실 당시 선생께서는 '무엇이 좋은 글일까' 보다는 차라리 '무엇이 옳은 글일까'를 고민하셨을 것만 같다. 이 책에서 선생이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추악한 모습을, 올바른 면보다는 부조리한 면을, 자랑스러운 점보다는 부끄러운 점을 더 자주 보여주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의 밝은 낮보다는 어두운 밤들이 이 책에는 더 많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이 산문집은 그 어두운 밤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간 한 사람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전망과도 같은 것이겠다. 덕분에 우리는 그 밤으로부터 배운다.
0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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