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번째 책) 천선란, 『천 개의 파랑』, 허블(2020)
문장력이 부족하면 정확한 소설이 되지 못하고 논리력이 부족하면 치밀한 소설이 되지 못한다. 또 감수성이 부족하면 섬세한 소설이 되지 못하고 애정이 부족하면 아름다운 소설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상상력이 부족하면, 소설이 되지 못한다.
요컨대 문장력과 기획력과 논리력 등등이 '좋은 소설'을 위한 자격 요건이라면, 상상력이란 우선 '소설'이 되기 위한 1차적인 관문이다. 충분한 상상력 없이 소설은 탄생할 수 없고 단연코 이것은 다른 어떤 능력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소설가의 자질이다. 상상력이 소설을 구성하는 게 아니라 상상력 위에 소설이 구성된다. 따라서 소설가는 빼어난 문장을 쓰는 사람도, 정교한 플롯을 짜는 사람도 아니다. 상상하는 자가 소설가다. 언제나 첫째가 상상력, 나머지는 그다음 문제다.
천선란의 장점은 바로 이 상상력에 있다. 이 소설은 그녀가 좋은 상상력을 펼치는 작가임을 분명히 확인시켜 줬다. 이때 '좋은' 상상력이란 '필요한' 상상력이다. 이 소설에서 그녀가 겸손하게 선보이고 있는 상상력은, 말하자면 꼭 존재할 필요가 있는 상상력이다. 가령 기술혁신의 시대에 누군가는 인공 지능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관계를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로 환원되는 시대에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상상들은 해보면 좋고 안 해봤어도 그만인 게 아니라 반드시 해볼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몇몇 작가들 덕분에 우리는 그 일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의 상상에 동참하는 방법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천선란의 소설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상상을 그녀가 제안하는 방식대로 해 보기 위함일 것이다. 휴머노이드와 인간과 말(馬)의 만남은 바로 그런 상상 중 하나다. 이런 것들에 대해 충분히 상상하지 않는 사회는 충분히 건강하지 않은 사회일 테니 말이다.
0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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