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지에 취하다

by 돌안개 석연


능수벚꽃이 흐드러진 날을 다 놓쳤다
살아가기 바쁜 날들이 애만 태웠다
그러나
하릴없이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음을 아셨는가
헛되이 보내지 않은 날들의 보상인가
나의 애가 하늘에 닿았는가
더 큰 선물을 주려 하셨다
그것마저 놓친다면
몸살이 날 것 같았다
상사병이 날 것 같았다
만사를 제쳐 두고 기어이 오늘은

나 너에게 취하리라




204,937㎡인 큰 저수지
무척 흥미로운 금호지의 전설
옛날 옛적에 황룡과 청룡(혹은 흑룡)이 하늘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였대
이것을 본 어느 용사
싸움을 멈추라고 소리치자
청룡이 놀라 아래를 보는 순간 황룡이 청룡의 목을 비수로 찔렀대
청룡이 땅에 떨어지면서 꼬리를 치니
그 꼬리에 쓸려 갑자기 하나의 큰 못이 이루어졌다네
이것이 오늘의 금호지
금호지는 청룡을 닮아 항상 물이 맑고 푸르다고
또한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금호지를 둘러봤느냐고 묻는다네
안 둘러봤다고 하면 게으른 놈이라고 벌을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승까지 이름이 난 저수지라고
그러고 보면 용이 있다는 전설이 당연한 일일지도
금호지는 둘레 5km로 굴곡이 많아
한눈에 저수지의 전부를 볼 수 없지만
그만큼 오목조목하면서도 수려하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에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추정을 한다 하니
그 세월이 얼마인가
마을 사람들은
금호지가 워낙 깊어 명주실 구리 3개가 들어갔다는 옛 전설을 이야기하고
주위를 둘러싼 울창한 송림과 상수리나무
금호지의 깊이만큼이나 켜켜이 세월의 나이테를 두르고
길고 긴 역사를 들려 주네



나 오늘 너를 만나
그 둘레를 다 둘러보진 못했지만
건너편에서라도 둘러보며 그나마 위안을 받았지
그 시원함
그 청량함
그 싱그러움
그 푸르름
나 며칠은 널 그리며 행복하겠지
너무나 짧은 시간에 동동거리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나마 그만큼이라도 너와 함께 할 수 있어
오늘 하루가 얼마나 행복한지
오늘 하루가 얼마나 흐뭇한지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의 너를 같이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나의 한 해를 풍성하게 해 줄 것 같아
고마워 금호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