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 이도 Dec 17. 2021

평화시장이라는 미장센을 구성한 여성 노동자들의 확대경

김정영, 이혁래 감독의 <미싱타는 여자들>, 2021


근로기준법, 평화시장, 전태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노동의 환경들엔 이미 알려진 노력들외에도 수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김정영, 이혁래 감독의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은 우리가 몰랐던 1970년대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을 통해 들려준다.

‘굶는 것에 굶주렸던 사람이잖아요. 근데도 너 밥 먹을래 노동교실 갈래하면 노동교실 간다고 할 정도로…’

-신순애 인터뷰 중,



‘시다'가 하는 일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저 할 수 있어요’라고 대담하게 외치며 시작한 공장일은 이야기의 시발점이 된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일해야했던 소녀들은 청계피복노동조합과 노동 교실을 만난 후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된다. 그녀들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노조를 탄압하고자 정부는 노동 교실을 강제 폐쇄하고 그녀들은 정부에 맞선다. 노동 교실에 가는 것이 삶이었던 소녀들 중 일부는 뭣도 모른 채 대담하게 맞서지만 이내 빨갱이라는 누명과 협박에 도달한다.


1977년 9월 9일 피고인으로 소환되기 직전 공장으로부터의 일시적 탈주에 대해, ‘전야제였지'라며 회상하는 바닷가 시퀀스는 파도치는 바다 앞에 서있는 세 인물의 풀샷-클로즈업샷-풀샷-클로즈업샷을 반복한다. 마치 이 프레임을 완성시킬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모습을 확대경으로 확대하는 것처럼 1970년대 ‘평화시장’이라는 미장센을 구성한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확대하는 듯 보여준다.


이 과거는 이들에게 어떤 기억이었을까.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기억, 억울하고 아픈 기억이라 자식에게도 선뜻 말할 수 없었다는 임미경씨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인터뷰하는 것조차 망설여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요즘은 아무도 남들에게 신경쓰지 않아'라는 딸의 말 덕분에 출연을 결심하게 된다. 알려지고 싶지 않다는 임미경씨의 마음에도 이 이야기가 널리널리 멀리까지 닿기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마음이 생길뿐이다.

어두운 방, 대화를 하듯 인터뷰하는 인물들 뒤로 보이는 스크린. 투영된 자신들의 모습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등장인물들은 어느순간부터 투영된 과거의 자신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의 청춘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과거의 10대 자신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크고 많은 노력에도 기록되지 못해 지워진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 중 70년대를 이뤄낸 여성들의 캐릭터, 아카이브와 연결된 증언, 연대까지 완벽한 서사는 2021년의 중요한 기록물이 된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One Life, Seige The D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